어음도 통화인듯 한데요 화폐가치로 통용되려면 어떤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현금처럼 화폐가치로 통용되는 겁니까?
어음이 최초로 사용된 싯점은 언제부터이며 화폐가치로 통용이 되려면 어떤절차와 과정을 거쳐 현금화되어 화폐가치로써 통용이 되는건지요? 그리고 어음은 한자어단어인가요? 한자어 음역이면 동양(동북아시아)에서 어음사용이 시작된것인지요?
또한 현재의 사용중인 어음종류는 어떤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유근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지폐 또는 지폐로도 알려진 지폐의 사용은 적어도 7세기경 중국의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부가 발행하고 규제하는 화폐의 한 형태였던 지폐의 사용은 중국에서 유통되는 금속 동전의 양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처음 개발되었는데, 이는 무겁고 운송이 어려웠습니다.
지폐를 발행하고 사용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정부나 중앙은행이 지폐를 인쇄한 다음 은행이나 다른 금융 기관에 배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 다음 은행들은 인출이나 현금 거래를 통해 대중이 지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폐의 종류에 관해서는, 다른 나라들은 그들만의 통화 시스템과 다양한 종류의 지폐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현재 유통되고 있는 액면가는 1달러, 2달러, 5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입니다.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은 다른 종파를 가지고 있고 지폐의 가치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중국어가 아니라 '빌(bill)'이라는 용어는 '서면 문서'를 뜻하는 라틴어 '빌룸(billum)'에서 왔으며, 14세기에 영어로 '빌(bill)'로 왔다. 중국어로 지폐를 뜻하는 단어는 "ǐì" (z币b纸)이며, 중국에서 지폐를 사용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초기의 지폐 형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지폐의 사용은 동북아시아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그것은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류경태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세계 최초의 어음교환소가 설치된 것은 1733년 영국 런던에 설치되었으며 미국의 경우는 1853년도 뉴욕어음교환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10년 7월 서울에 최초로 어음교환소가 설립되고 전국 각지에 어음교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어음은 한자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유어이며, 예전의 ‘어음’은 돈 치르기를 약속하는 표쪽이었다고 합니다. 어음이란 정한 시기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유가증권으로 종류로는 '약속어음'과 '환어음'이 있습니다.
밑의 내용은 http://encykorea.aks.ac.kr/의 어음과 관련된 자료에서 가져온 내용으로 우리나라 어음의 시작과 변천사에 대한 내용이니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고유한 전통적인 어음이 있었는데 이는 어험(魚驗) 또는 음표(音票)라고도 하였다. 전통적인 어음은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약속하는 표권(票券)이며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상평통보가 교환수단으로 널리 유통하게 된 이후부터 신용을 본위로 하는 개성상인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뒤 점차로 주로 객주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행되어 통용되었다.
이는 보통 길이 6∼7치와 너비 2∼3치의 종이로 작성되었는데, 종이의 중앙에 ‘출문(出文) 또는 출전(出錢) ○○○냥(兩)’이나 ‘출급(出給) 또는 출차(出次)’라고 기입되었다. 이는 출문 또는 출전은 얼마만큼의 금액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출급 또는 출차는 지급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어음의 오른쪽 또는 왼쪽의 윗부분에 작성한 날짜를, 그 밑부분에 채무자의 성명을 기입하고 날인하였는데 성만을 기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급기일이 기입된 것도 있고 또는 그것이 기입되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전자는 그 날짜가 되면 지급되는 것이고 후자는 요구불로서 언제든지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음의 기일은 원칙적으로 1파수(一派收) 또는 2파수로 되어 있었으며 길어도 2개월을 초과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단 어음이 작성되면 보통 어음의 가운데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절단하여 채무자의 기명이 있는 쪽인 남표(男票, 雄片·雄票)를 채권자에게 교부하고 다른 한쪽인 여표(女票, 雌片·雌票)를 채무자가 보관하였다. 남표의 보유자가 채무자에게 지급을 요구하게 되면 채무자는 그가 보관하고 있는 여표와 맞추어 보고 액면의 금액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개 어음을 절단하지 않고 그대로 채권자에게 교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 어음은 배서 없이 양도되고 있었으며 누구든지 어음의 보유자는 채무자에게 지급을 청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어음은 상평통보가 무겁고 부피가 커서 운반하기가 불편한 시대에 간편하고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는 신용수단으로서 널리 유통되었다.
1876년(고종 13)의 개항 이후로 전통적인 어음은 종래보다 훨씬 많이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신용도가 높아 우리 나라 사람 사이에는 물론 중국인·일본인에까지 아무런 장애 없이 활용되어 그 유통범위가 한결 더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의해서도 우리 전통적인 어음이 발행되어 통용되기도 하였다. 상평통보, 즉 엽전이 주로 유통되고 있던 남부와 동북부지방에서는 엽전(葉錢 또는 韓錢)어음이 널리 통용되었다.
1894년의 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에 의해서 우리 나라가 은본위제도를 채택한 이후 백동화(白銅貨)가 발행되기 시작하여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와 서북부지방에서는 어음의 금액이 백동화로 표지되어 있는 백동화어음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04년 12월에 우리 나라의 전환국(典圜局)이 일본의 강요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1905년에는 화폐개혁이 단행되었다.
이때 우리 나라 화폐와 일본화폐의 교환비율을 1:2로 하여 우리 나라 화폐의 가치를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백동화와 우리 나라 화폐와의 교환에 있어서 차등교환을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 사람이 보유한 화폐자산이 감축되었다. 특히, 여기에서 우리는 구백동화의 13분의 1, 즉 300만 원이 일본에서 밀수입되었다는 데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금융공황이 발생하자 일본인은 그 원인이 우리의 전통적인 어음 특히 백동화어음의 남발에 있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비난하였다.
1905년 8월에는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방과 지방 사이의 금융을 원활하게 소통시키고 있던 외획(外劃)을 폐지하더니, 9월에는 약속수형조례(約束手形條例)와 수형조합조례(手形組合條例)를 공포함과 동시에 아무런 과도적인 조처도 없이 무모하게 우리의 전통적인 어음의 발행을 금지시켰다. 1906년에는 이들 두 가지 조례를 통합한 수형조례가 발포됨에 따라 제도적으로는 전통적인 어음이 폐지되고 근대적인 어음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자생적으로 민간에서 널리 통용되던 전통적인 어음은 규모는 축소되었으나 일본강점기와 광복 후에도 계속 통용되었다. 고유의 어음이 주로 객주에 의하여 발행되어 통용되었는데 객주는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으므로 전통적인 신용수단인 어음은 면면히 유통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전통적인 어음이 일제강점기에 있어서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한 군자금을 갹출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독립자금을 갹출하고자 하여도 당장 현금이 없는 경우에는 우선 어음을 독립군에게 수여하고 뒷날에 그 어음에 의거하여 독립자금을 수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어음은 전통적인 어음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것은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장소에서 지급한 것을 기재하고 기명날인한 증권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이는 상품의 인도와 그의 대금지급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발생하여 상업신용이 나타났을 때 신용수단으로서 활용되게 되었다.
이에는 약속어음과 환어음이 있는데 전자는 발행인이자 지급인이 일정한 날짜에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형식의 어음이고, 후자는 어음의 발행인이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날짜에 지급할 것을 제3자에게 위탁하는 형식의 어음이다. 거래되는 상품을 기초로 하여 발행되는 어음을 상업어음 또는 진성어음이라 하며, 상품거래 없이 발행되는 어음을 금융어음 또는 융통어음이라고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어음)]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