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시대에 명도전이라는 돈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오래전부터 돈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왜 오랫동안 돈이 등장하지 않았을까요?
그 사이에는 그저 물물교환만을 통해 거래를 했던 걸까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폐가 꾸준히 만들어졌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물교환이 좀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명도전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화폐이며, 손칼 모양의 청동화폐로 ‘明’자가 장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국사략』과 『해동역사』에는
기원전 957년 기자조선 흥평왕 때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인 자모전(子母錢)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원왕(太原王) 공(孔)과 경창왕(敬昌王) 장(莊)의 재위를 거쳐 흥평왕(興平王) 착(捉)은 자모전을 주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게속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주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는 고려 때 만든 ‘건원중보’예요. 이것은 중국의 엽전을 본떠 만들었습니다.그 후에도 고려에서는 여러 가지 주화를 만들었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쌀이나 옷감 등의 물건으로 값을 치르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야 화폐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1651년 나라에서는 화폐의 사용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돈의 값을 ‘쌀 한 되에 동전 네 개’로 정하고, 백성들의 세금도 주화로 내도록 했습니다. 그 후 1678년에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화폐인 ‘상평통보’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널리 사용되었답니다.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도전의 모양이 불편한 이유로 명도전 이후부터의 주화는 전부 원형으로 제작됩니다. 명도전과 유사하게 무기의 형태를 띤 화폐로 조선시대 세조의 명으로 주조된 전폐라는 물건도 있으나, 역시 사용하기 불편해 얼마 안 가 사장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명도전은 고조선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도입한 것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사용되었던 도전(刀錢)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명도전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손잡이가 달린 칼 모양의 화폐입니다. 명도전은 주로 연(燕)나라에서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제(齊)나라와 조(趙)나라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명도전은 고조선 시대에 사용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오랫동안 돈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산력의 한계
고조선 시대의 생산력은 매우 낮았습니다. 농업은 간단한 경작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수공업도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돈을 사용하기 위한 충분한 물량이 생산되지 못했습니다.
교역의 한계
고조선 시대의 교역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교역 대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기 위한 충분한 수요가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중앙집권화의 부족
고조선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였습니다. 각 부족은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중앙 정부의 통제가 매우 약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통일적인 화폐를 발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고조선 시대 이후에는 그저 물물교환만을 통해 거래를 했습니다. 물물교환은 상품을 직접 교환하는 방식으로, 돈을 사용하지 않는 거래 방식입니다. 물물교환은 매우 불편한 방식이지만, 생산력과 교역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거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생산력과 교역이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국가가 중앙집권화되면서, 통일적인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국시대에는 금속 화폐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