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번아웃인줄 알았는데 그냥 쓰레기인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잘 그려서 중학교 때 입시를 해서 예고에 진학했어요. 그것도 실기우수전형으로요. 그걸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인생 처음으로 이루어낸 성과라 굉장히 뿌듯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무언가 망가진 것 같아요.
입시학원은 다들 하듯이 1년 정도 다녔었고, 전 자유로운 형식에서 가장 뛰어난데 입시에 맞는 방향으로 그림을 수정하느라 굉장히 애먹었었어요. 또 저 특유의 세밀한 디테일도 시간 내에 그려내려고 버리다 보니 그 전까지 쌓아온 스타일도 사라졌구요. 원장님은 절 천재라고 불렀지만, 입시에서 얻은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불러 고등학교 입학 직전엔 하루 18시간 잠만 자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자각하고 병원에 갔지만, 치료를 지속한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건 없어요.
그 이후로 저는 그림을 쉬었는데, 6개월만에 그림 실력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어요. 원장은 실력이 줄었다며 저를 반기지 않았고 전 국내 입시를 포기하고 유학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너무 고생을 했어서인지, 더이상은 노력할 수가 없었어요.
위에서 말했듯이 5년이 지났는데, 저는 여전히 우울증을 달고 살고, 이전처럼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못해요. 다들 하는 입시인데 나만 힘들어하고 몇 년이 지나서도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정말 쓰레기 같아요.
그때 생긴 번아웃이 지금까지 지속된 건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젠 변명거리로서 게으른 자신을 그저 감싸기만 합니다.
유학 준비 막바지라 포트폴리오도 꾸역꾸역 하기 싫은 티를 내며 간신히 완성했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단계까지 다 왔는데 또다시 전부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냥 관두고 싶어요.
평소에도 하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아 무겁게 느껴지면 그냥 침대로 들어가 자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회피 습관으로, 포트폴리오 학원도 그렇게 마음대로 빠지는 게 일주일에 이틀은 됩니다. 이런 제 자신이 한심스럽고 역겨워요.
가서도 고생할 생각을 하면 괜한 짓을 했다 싶습니다.
준비가 끝났으니 떠날 참인데 저는 전부 관두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잠이나 자고 싶어요.
지금도 해야할 일이 확실한데 하기 싫어 이딴 글이나 쓰고 앉았네요.
잘하는 건 그림 뿐이라 이 길에 발을 들였는데 이젠 연필을 놓은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진로나 세분된 전공 선택도 못 하겠고, 이젠 비숙련직 아르바이트나 하며 사는게 마음 편할 것 같아요.
구글링을 하면 작은 것부터 실천해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걸로 성취감을 느껴보라는데 당연히 실패했고 이젠 씻는 것도 3일을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지금도 씻지 않아서 제 머리는 떡져 있어요.
이건 과연 몇 년째 지속중인 번아웃일까요? 아니면 그냥 제가 노력하기 싫어하는 한심한 인간인 것을 외부에서 이유를 찾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