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이비종교 백백교는 어떴게 생기게 되었나요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다큐로 한국의 사이비종교관련해서 관심이 조금 생겼는데 조선시대에도 사이비 종교가 있었다고 하던데 백백교는 언제 어떻게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3년 우광현(禹光鉉)이 창시한 종교입니다.
전정예(全廷藝)의 백도교(白道敎)를 개칭하여 세운 신종교이다. 우광현은 백도교 교주 전정예가 1919년에 사망하자, 그의 죽음을 숨기고 전정예의 아들 전용해(全龍海)와 상의하여 암매장하였다.
그런데 1920년 평안남도 강서의 정성희(鄭聖禧)가 그의 아버지 정근일(鄭根一)이 백도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데 격분, 경찰에 고발하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전정예가 죽은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하였다.
이에 우광현은 교명을 백백교로 바꾸고 전정예를 교조로, 그리고 자신을 교주로 하는 새 교단을 창설하였다. 1924년 우광현이 교주직을 사임하고 김공연(金公然)이 취임하였다가, 1927년에는 차병간(車秉幹)이 교주가 되면서 본부를 서울로 옮겼다.
그 때까지 실질적인 교단업무는 전용해가 맡아왔다. 이 교는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전용해는 간부 문봉조 등 18명과 함께 신도 31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1940년에 모두 체포되어 12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나머지도 무기 내지 수년씩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도주하였던 전용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 교는 소멸되었다. 백백교는 전용해를 천부님의 아들로 받들고 세상은 멀지 않아 불심판과 물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난소를 찾아야 한다면서 전국 53개소에 임시분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백백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공인종교라고 하는 일반 종교계에 대해서는 이러한 탄압·통제·이용정책을 쓰는 한편, 민족적 색채가 농후하고 이용가치가 적은 비공인 종교였던 신종교들에 대해서는 더 가혹한 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총독부가 ‘종교유사단체’로 지칭한 신종교들에 대한 통제와 탄압은 1935년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탄압은 주로 총독부 사회과와 일제 경찰들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총독부 사회과에서는 이에 대한 단속방침을 마련하기 위하여 1935년 6월 10일부터 2일간 ‘종교유사단체 취체회의’를 소집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경기도에서도 도미나가 분이치 지사와 사에키 아키라 경찰부장 등 10여 명이 회합하여 총독부 방침에 준하여 관내 사찰 정화에 관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일본 본토에서도 그 무렵 ‘종교경찰’을 두고 대본교 탄압에 들어감으로써, 조선총독부 경찰도 같은 종교단체의 조선 지부의 검거 탄압에 착수하여 1936년 4월 10일 이 단체를 해산시켰습니다. 일본 내무성에서 1935년이래<사교취체에 관한 건>에 의해 종교탄압을 통하여 국민사상통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방침을 조선총독부도 그대로, 아니 보다 더 가혹하고 충실하게 추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종교단체와 종교에 대한 검거와 탄압이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더욱이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제는 종교단체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이로 인한 종교단체 및 종교인에 대한 검거와 처벌 사건이 속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7년에 검거되어 탄로 난 "백백교 사건"은 일제의 종교탄압의 좋은 명분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1938년 4월에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충남지역에서 정도교의 교주가 검거된 것을 비롯해서 같은 해 8월에는 성도교와 전북지역의 황극교가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검거되어 기소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수운교·무극대도교·흠치교·천도교 구파·태극교 등이 치안유지법·보안법 등 위반혐의로 대거 검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물론, 당시 조선 민중의 종교적 정서를 대변하던 신종교 종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 단체와 종교인들을 국체변혁·불경·치안유지법위반·보안법위반·군형법위반 등의 이유로 검거하여 처벌하였던 것입니다. 1940년 10월 당시 총독부 고등법원 검사장이던 마스나가 쇼이치가 사법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다음과 같은 훈시는 그들이 어떤 시각에서 종교단체들을 보고 있으며, 이들에 대해서 어떤 탄압정책을 마련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3년 우광현(禹光鉉)이 창시한 종교. 전정예(全廷藝)의 백도교(白道敎)를 개칭하여 세운 신종교이다. 우광현은 백도교 교주 전정예가 1919년에 사망하자, 그의 죽음을 숨기고 전정예의 아들 전용해(全龍海)와 상의하여 암매장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