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임시정부를 떠난 이유는 우선 상하이 생활의 어려움과 임시정부 내부의 갈등에 지쳤고, 실력 양성이 먼저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는 1921년 건강 악화와 경제적 어려움, 독립 운동 세력의 분열 등을 구실로 귀국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1922년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실력 양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 노선과 점점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애인 허영숙이 1921년 상하이로 찾아와 이광수의 귀국을 권한 것도 원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사전 공작과 허영숙의 밀정 활동에 대한 의심도 있으나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광수는 1930년 일제가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는 계기로 황국신민화의 전쟁을 선전하는데 앞장서면서 친일로 변절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