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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안시성 전투의 전개과정은 무엇인가요?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밀리다가 안시성 전투에서이 승리를 바탕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는데요. 안시성 전투의 발발시기와 승리비결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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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시성 전투는 645년 당태종이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하였습니다. 4월 대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 본격적으로 침공했는데, 초반에 신성, 건안성,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함락하며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당군의 다음 목표인 안시성을 함락해야 했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7월 21일 당군은 안시성 밖에서 포위하고 공성전을 시작했습니다. 초기 투석전으로 성을 공격하였으나 안시성은 산지에 위치하여 무기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당군은 60일에 걸쳐 50만명을 동원하여 성벽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토산이 무너져 오히려 고구려군이 토산을 점령하였습니다.

    당군은 보급 문제과 고구려군의 저항으로 지치기 시작하여 80일간의 포위전에서 고구려가 승리하게 됩니다.

    승리 비결은 지리적 이점, 뛰어난 방어 전술, 단결과 사기, 당군의 보급 부족, 토산 붕괴와 역습 등이 승리 요인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약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요동 지역으로 진군했습니다. 당군은 먼저 요동성과 백암성을 차례로 함락시키며 고구려를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던 안시성을 공격 목표로 삼고 포위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안시성의 성주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지만, 용감하고 지혜로운 지휘로 병사들과 함께 완강하게 항전했습니다. 당군은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전투가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병참선이 길어지고 군사들의 피로도 심해졌습니다.

    이에 당 태종은 성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거대한 토산(土山), 즉 인공 언덕을 쌓아 성벽보다 높은 곳에서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개월에 걸쳐 흙과 돌을 동원해 토산을 완성했으나, 고구려 군은 이를 알아차리고 야간 기습을 통해 토산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세는 점점 고구려 쪽으로 기울었고, 장기 포위로 인해 당군 내부에서 식량 부족과 질병이 발생하면서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더불어 고구려의 대규모 지원군이 도착한다는 첩보까지 전해지자, 당 태종은 결국 안시성 함락을 포기하고 철군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