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훈민정음 창제는 왜 곧바로 한글문학의 융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나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도 이후 상당 기간 한문학이 여전히 주류였다고 배우는데,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졌는데도 왜 바로 한글문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좋은 것이라고 무조건 유행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관성적인 생물입니다.

    인체공학적이라서 연습만 하면 타자 속도가 10배가 되는 키보드가 이미 개발 되었지만

    사람들이 이미 쓰던 걸 바꾸기 귀찮아서 지금 님과 제가 쓰는 이 키보드가 계속 사용될 정도로 변화를 싫어하죠.

    심지어, 당시 한글은 2류 글자 취급 이었습니다.

    중국의 한자가 학문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이었고

    표의 문자의 함축성을 철저히 활용하도록 대부분 분야가 이미 개발이 끝난 상황에서는

    "배우고 쓰기 쉽다" 라는 한글의 특성은 오히려 계급을 해치는 행동이고

    중국에게 시비거는 행동이죠

    현대로 비유하자면.

    당시에 한글문학을 만든다는 것은

    "크크루 삥뽕 미국 개허접 쓰레기 ㅇㅈ? ㅇㅆㅇㅈ~" 같은 문장을

    그냥 한글도 아니고 뭐 지 혼자 만든 이상한 폰트로 쓴다는 그런 느낌인데

    이걸 양반들이 할 수가 있나요. 하더라도 익명으로 몰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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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손용준 전문가입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하기 위해서 일반 백성들이 글을 배우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습니다. 한문만을 유일한 진정한 글이라고 인정하고 한글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양반들이 배우지 않고 서민들이나 아녀자들 위주로 글을 배우게 된 것 입니다. 한글이 융성 하게 된 시기는 창제 후 약 150년~200년이 지난 조선 후기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일반 백성들의 힘이 비교적 커져 가면서

    한글 편지와 한글 소설이 유행하기 시작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 한글문학이 바로 융성하지 못한 것은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한문 중심 권력 지형과 한글 폄하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지배층은 한문지식을 권력 유지를 위한 독점적 도구로 여겼고, 한글을 공식 문학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초기 주로 종교 서적 번역이나 민간 유통에 머물렀으며 조선 후기 가사와 국문소설이 널리 보급되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한글 문학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