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문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때 세종대왕이 보다 쉬운 언어를 만들고자 고안했던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문이 오랫동안 지배적 문자로 남았던 이유는 무엇이며, 왜 당시에 한글은 오늘날의 것과 차이가 있었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한글을 창제 이후에도 한문 사용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지배계층인 양반들이 유교를 국시로 삼아 오고 있어 과거 준비, 행정 등에 공식 문자로 한문 사용은 계속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한글을 '언문', '암글'이라며 비하하였기 때문에 지배계층으로까지 한글 사용이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외교, 유학 중심의 교육 체계 때문에 한자 사용이 지속적이었습니다.
과거 훈민정음이 오늘날 사용하는 한글과 차이나는 이유는 본래 28자였던 것이 24자로 간소화하여 일부 자음과 모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문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당시의 기득권이 양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글자라는 것은 사실 배움에 있어 가장 처음이 되는 요소입니다. 조선은 이런 글자를 양반들에게만 허락하고, 양반들만이 배움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훈민정음의 가장 첫 장에 나오는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이유도 중국과 말이 달라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기에, 이를 가엽게 여겨 한글을 창제하였다고 써있습니다. 세종은 한글을 통해서 백성들을 계몽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던 양반들은 당연히 백성들이 배우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양반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한글을 꽤나 많이 사용하긴 하였으나, 양반들은 "언문"이라 하여 한자보다 아래의 글자로 낮추어 불르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 창제 이후에도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한자였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자음 17자·모음 11자로 총 28자였고, 현재는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총 24자 입니다. 없어진 글자들은 키보드 자판에서 보여드릴 수 없으나, 유성음으로 세모 모양의 반치음, 옛 이응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