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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향고래93
거대한향고래93

장영실은 어느정도 벼슬 위치까지 올라갔나요?

장영실은 양반출신이 아닌데 과학재주가 뛰어나 벼슬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신분에서 어느정도의 위치까지 올라갔고 누구와 어울렸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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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장영실에게 관직을 하사한 세종은

    장영실이 자격루 제작에 성공하자

    다시 장영실의 관직을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으로 높여주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민 출신 이였던 장영실은 1433년 세종 15년 9월 16일 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은 종3품 대호군까지 승진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먄 차관 바로 밑에 관리관 정도 되는 고급 공무원 직책 이였습니다. 천민 출신 이였던 그에게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꿨던 동지이자 친구, 영원한 파트너였던 분은 세종 대왕 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영실은 조선 중기의 과학자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조이씨(李祖儀)와는 친하게 지내며 함께 과학 기술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조이씨는 조선 후기의 과학자이며, 장영실과 함께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장영실은 광해군과 함께 일하면서 천문대 건설과 천체 관측 기기 개발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선조와 함께 일하면서 수작업 기계 개발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장영실은 후에 이조이씨와 함께 화성천문대 건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장영실의 벼슬은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지위였습니다. 그는 선조의 시종을 지낸 뒤, 무과에 급제되어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광해군의 지원을 받아 천문대 건설과 천체 관측 기기 개발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선조의 지원을 받아 수작업 기계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조이씨와 함께 화성천문대 건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관노에서 시작을 했지만

    마지막까지는 1433년 세종 15년에 정4품인

    호군의 관직까지 얻은 것으로 기록이 돼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노비 출신에서 등용되어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종 3품의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조선시대 중기 과학기술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로, 과학기술, 천문학, 수학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장영실은 양반출신이 아니었으며, 부모님도 상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높은 지식과 재능으로 구경꾼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를 인정받아 경국대전의 업적으로 유명한 성종의 시신감 등을 맡으며 벼슬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422년에는 화석의 제작과 인쇄 등을 담당하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교인 성균관에 천문학 교수로 임명되어 교육과학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허준과 친분을 쌓았으며, 김세종과도 교류를 통해 조선의 과학 기술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장영실은 조선시대 중기의 학문사상적 분위기와 성종의 지원 등이 만나 그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불리며, 그의 기술과 성과는 후세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주 유명하고 자랑스러운 분입니다.^^

    장영실은 조선 제4대 왕 세조의 대신으로 벼슬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관료제도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이후 천문학, 수학, 무기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정 4품까지 했다는ㄱ ㅓㄹ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조선시대 중기의 과학자이며 천문학자, 수학자, 기계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활동하였으며, 다양한 발명품과 천문학적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장영실은 조선시대 후기인 1608년 경성 부암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 천문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졌으며, 1624년에는 어깨받이, 1627년에는 석고옥, 1628년에는 충정시계 등 다양한 발명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그 후, 1629년에는 성종의 천문 관찰을 도우며 그가 만든 천문기계를 사용하여 천문학적인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후, 1631년에는 광해군에게 광해군용천문기를 제작하여 선물하였고, 1633년에는 조선 최초의 천문학서인 "신원강보"를 완성하였습니다.


    장영실은 그 후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이후 1636년에는 순조와 함께 조선으로부터 일본으로의 대외규장을 수행하는 "순조대외참사"로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후에도 다양한 발명품과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그의 업적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