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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19

제주도 돌하르방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제주도에 여행 하다보면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이 많이 있습니다.생긴게 참신기하죠

제주도 돌하르방을 만들게 된 유래는 무엇인가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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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23.02.19
    불과 조선시대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이름은

    탐라로 불렸는데 주로 유배지에 해당될 만큼

    처참한(?) 곳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는 섬이라서

    보급도 안되지, 농사는 거의 짓지도 못하는 수준이고, 대륙으로부터

    분단되어 생활 형편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왜구(주로 일본 해적)들의 침입을 받는 완전히 죽음의 땅이었죠ㅡㅡ

    그런데 거기에 어떤 벼슬아치(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ㅈㅅ;;)와 김몽규 목사가

    유배를 당해 제주도에 오게 됩니다. 그들는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놀랐죠. 사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제주도 사람들을 도우려고 왜구를 막을 방법을 연구하였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군사도 없고 군대를 만들수도 없는 형편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큰 조각상을 세워 왜구를 물리치고자 하였어요. 장승처럼 말이예요.

    그 조각상의 인물은 완옹중이예요. 완옹중은 고대 중국의 용맹한 장수지요. 그는

    한번에 1000명을 당해낼 만큼 용맹했다고 해요. 특히, 중국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흉노족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지요. 김몽규 목사와 유배당한 벼슬아치는

    완옹중 장군의 모습을 돌에 새겨서 왜구가 자주 침몰하는 곳에 세웠어요. 그 조각상이

    바로 돌하르방의 시초, 옹중석이랍니다. 그 뒤, 왜구는 옹중석의 모습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도망치기 일쑤였죠ㅡㅡ 그 결과, 제주도에 쳐들어오는 왜구들의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옹중석을 계속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뒤, 다양한 모습의 옹중석이 만들어지면서

    결국 돌하르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돌하르방이라는 말에서 '하르방'은 제주 방언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인데요. 즉,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 해서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제주의 자연 환경상 비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돌로 만들어졌다는 속설도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은 제주도 자생설과 남방설이 있지만 몽골 북방에서 들어온 북상설이 강력한 호소를 갖습니다.

    제주도 돌하르방의 유래는 여러가지로 분석해본 결과 예로부터 제주도에 있었던 돌 문화에 몽골 돌 문화가 들어와서 돌하르방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재창조된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돌로 만든 할아버지란 뜻의 돌하르방은 장승을 대신한 마을의 수호신으로 영조30년 목사 김몽규가 옥중석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유래가 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이라는 말에서 '하르방'은 제주 방언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인데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 해서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제주의 자연 환경상 비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돌로 만들어졌다는 속설도 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돌하르방이 생겼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라고 하며 다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appyjejudo&logNo=220786813778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의 유래가 궁금하군요.

    돌하르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석익 교수의 〈탐라기년(耽羅紀年)〉입니다.

    영조 30년(1754년)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김몽규 목사가 중국의 옹중석을 제주에 세운 뜻은 전염병이나 원귀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가지로 고찰해 볼 때 믿을 만한 이야기가 못됩니다.

    현재 남아 있는 52기 돌하르방은 그때 제주목, 대정진, 정의진 등 3개 음성의 성문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옹중'이란 중국 진시황 때 사람으로 완옹중(碗翁仲)을 지칭하며 그는 남해 거인으로 힘은 1,000명의 기운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진시황제는 완옹중이를 시켜 흉노족 등 북방 침략자를 토벌하여 격퇴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돌하르방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큰 눈에 자루 병 같은 코를 가졌으며, 두툼한 겨울 모자를 썼고, 불룩한 뺨에 꽉 다문 입술을 지닌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배어 있다. 돌하르방은 묘한 인상을 풍기는데,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을 보이는 동시에 미소를 자아내는 돌하르방의 모습에서는 특유의 해학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제주시에 있는 것과 성읍리에 있는 것은 기석을 받쳤다. 이 석상은 성문 앞에 서서 위엄을 보이면서 수호신적, 주술적, 금표적 기능 등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장승의 기능이 매우 유사하다.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생긴 명칭이고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옹중석, 벅수머리' 등으로 불렸다. '돌하르방'이란 명칭은 할아버지라는 제주도 방언인 '하르방'에 '돌'이 앞에 붙은 낱말 구조로서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채택한 이래 다른 이름보다 급속도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주도 상징 돌하르방의 유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최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