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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5.21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원래 영국 인인가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국부로서에 유명한대요 조지 워싱턴은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인가요 아니면 원래 영국 사람인데 독립운동을 해서 대통령이던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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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출생지가 미국 버지니아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으로서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헌법제정회의에서 새로운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 권한을 강화하였다. 초대 대통령이 되어 국내 여러 세력의 단합과 헌법의 실현 등에 힘써 신생 미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출생-사망1732.2.22 ~ 1799.12.14

    국적 미국

    출생지 미국 버지니아주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지니아주 출생.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토지측량관이 되었다. 1752년 이복형이 죽자 광대한 마운트버넌의 토지와 버지니아 민병대(民兵隊)의 부대장직을 이어받고 1754년 7년전쟁, 즉 프렌치인디언전쟁에 참가하였다.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땅이 프랑스인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반대한 때문이었다. 그후 본국과 식민지와의 항쟁이 일어나자 서부의 토지문제를 놓고 본국의 정책에 크게 반발하였다.


    버지니아의회 의원으로서 1765년 P.헨리를 지지, 인지조례(印紙條例)의 반대를 관철시켰으며, 1769년 타운센드법을 반대하다 의회가 해산당하게 되자 영국상품 불매동맹을 결성하였다. 1774년 제1회 대륙회의에, 1775년 제2회 대륙회의에 버지니아의 대표로 참석하고, 이 회의에서 무력항쟁이 결의되자 그는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총사령관으로 있으면서 피로에 지친 식민지군을 격려, 역경을 극복해나갔다. 1781년 10월 프랑스군의 원조를 받아 요크타운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1783년 강화조약이 체결되자 군대를 해산시킨 뒤 연합회의에 군의 통수권을 반환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연합회의가 무력하여 미국의 독립이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자 1787년 헌법제정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의장직을 맡아 새로운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이 헌법에 의하여 1789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같은 해 4월 30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는 국내 여러 세력의 단합에 노력하고, 헌법을 실제 정치에 반영시키는 한편, 여러 나라와의 국교를 조정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정견을 달리한 A.해밀턴과 T.제퍼슨을 각각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으로 기용하여 국내 재정정책의 수립과 외교정책의 정비를 담당하게 하였다.

    1793년에 발발한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해밀턴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중립을 선언하고, 유럽의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주주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하였다. 신생(新生) 미국의 기반을 굳게 다진 데 대한 그의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워싱턴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전직 영국군인이었지요. 다만 그것이 과연 그에게 영국에 대한 충심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의문입니다. 프랑스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별볼일 없게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하게된 이유는 앙숙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죠. 만약 미국에게 패한다면 영국의 위상이 많이 추락하며 큰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에 프랑스는 미국이 이뻐서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적에게 피해를 주기 위함이죠. 아까 말했듯이 워싱턴은 미국 출생인으로서 당시 그의 가족은 알아주는 부자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국군에 입대해 큰 성과도 얻은 영웅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따져야 할 것은 그를 영웅으로 여기는 이유는 영국군으로서의 자부심보다는 미국이라는 곳을 지켰음에 영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패하게 된다면 그 식민지인들또한 학살의 불씨를 벗어날수 없게 되죠.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1732년 2월22일 미국의 버지니아 식민지의 웨스트모얼랜드 카운티에 소재한 오늘날의 콜로니얼 비치 인근에서 어거스틴 워싱턴과 메리 볼 워싱턴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인이지 영국인은 아닙니다. 물론 족보를 따라 올라 가다보면 모든 오리지날 미국인들의 조상은 영국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국적을 영토 주의로 취하고 있기에 워싱턴은 미국인으로 봐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