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고종은 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선택했나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아관파천을 배우는데, 자국 궁궐을 떠나 외국 공사관에 머무르는 이런 이례적인 선택을 하게 된 절박한 상황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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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은 1896년 2월 궁궐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했습니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한 이유는 우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피살되어 극심한 공포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 것입니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 급진적인 친일 내각이 들어서 고종은 사실상 감금 상태로 일본군의 무자비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습니다.

    반면 이범진, 이완용, 이윤용 등 친러파 인사들이 궁녀 김씨와 엄상궁을 통해 고종에게 접근하여 대원군과 친일파들이 고종의 폐위를 공모하고 있으니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아관파천을 통해 친러 내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습니다.

    결국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서문인 영춘문을 나와 궁녀의 가마를 타고 극비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아관파천으로 친일 내각이 무너져 일본의 손아귀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으나 러시아에 많은 이권을 침탈당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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