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수의는 논란이 많은 배경이 무엇인가요?
이탈리아에 토리노수의가 보관되어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리노수의에 대해서 모조다 가짜다라는 논란이 많은것으로 아는데 정확히 어떠한 배경과 논란이 있는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토리노 수의의 논란은 이탈리아 사진가 세콘도 피아가 왕의 허락으로 수의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 수의의 형상이 너무 희미해 세콘도 피아는 실망했으나 그가 촬영한 원판은 세상을 뒤집게 됩니다.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의 사진작아인 세쿤도 피아라는 사람이 신성한 수의를 촬영하고 싶다고 신청, 이에 허가를 받아 촬영하는데 수의를 네거티브 촬영하자 수의 안에서 놀라운 형상이 나타나는데 수염이 난 남성의 얼굴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토리노의 수의가 예수의 몸을 감싼 진짜 세마포라는 주장이 제기, 수의의 진위를 놓고 격론이 일기 시작합니다.
교황청이 수의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극도로 제한한 탓에 명백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나 1988년 옥스퍼드 대학, 애리조나 대학,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의 3개 대학이 공동으로 토리노 수의의 미세 샘플을 입수해 방사성 탄소동위 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옷감은 1260~1390년 사이 만들어진 직물이라는 것을 발표, 이 결과 수의가 가짜이며 중세에 만들어진 조작된 성유물이라는데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찬성론자들은 이에 반발하는데 이들은 1973년 스위스 연방경찰 범죄과학반의 프라이 박사가 직물에서 채취한 꽃가루의 조사를 근거로, 이 꽃가루 조사에서 레바논삼을 포함한 58종의 꽃가루가 채취되었는데 이중 45종은 예루살렘 근처에만 자생하는 꽃가루였고, 6개는 중동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꽃가루였습니다. 그들은 토리노 수의가 조작이라면 어떻게 사해 근처에서 자생하는 꽃가루가 묻을수있겠느냐 주장했습니다.
또 1988년 연도 조사는 수의 자체가 아니라 수의를 수리하려고 기워놓은 중세의 천 조각을 연도조사한 결과하고 맞서며, 수의를 분석하면 십자가형의 상처자국으로 보이는 형상이 손바닥이 아닌 손목에 나있는데 중세 때는 십자가형이 손바닥에 못을 박는다고 알려져있었고, 따라서 중세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면 당연히 상처자국이 손바닥에 나 있어야 옳은 데 그렇지 않으므로 최소한 중세의 위작은 아니라는 말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