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동파가 살던 시기의 동아시아는 고려와 북송, 거란이 각축했다. 북송 서쪽에는 서하도 건재했기에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4강 체제였다. 고려와 송나라는 우호 관계였다. 거란의 압박에 국력이 약화된 북송은 고려를 크게 의식했다. 나라의 살림에 문제가 될 정도로 고려 사신을 환대했고, 고려의 외교관은 상대적으로 고자세였다.
이를 굴욕외교로 여긴 소동파는 반 고려 입장에 섰다. 이 무렵에 거란은 송나라를 치기 위해 고려를 침공했다. 그런데 소동파는 거란과 고려의 전쟁 사실도 모른 체 고려를 오랑캐로 칭하는 개인적 편견과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는 상소문인 ‘논고려진봉장(論高麗進奉狀)’에서 “고려 사신 접대를 위해 사관을 짓고, 배를 건조하느라 농민 어민 상인들이 병이 날 정도로 힘들어한다. 나라에는 조금의 이득도 없는데, 오랑캐는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