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마라는 자코뱅파의 일원으로 1793년 7월 13일 지롱드당 지지자인 샤를로트 코르테에 의해 칼에 짤려 암살당했습니다. 마라는 신문 <인민의 친구>를 통해 귀족과 반혁명 세력을 공격하며 민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다비드는 마라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 이상화된 순교자로 이미지로 변형하였으며, 자코뱅당은 마라의 죽음을 혁명에 이용하기 위해 순교자로 추앙했습니다.
즉, 마라의 죽음은 자코뱅당에게 반혁명 세력 척결의 명분을 제공한 것입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 중심의 공포정치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은 수많은 사람들을 마라의 복수라는 이름으로 단두대로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