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신라 하대에는 왜 왕위 쟁탈전이 그렇게 자주 일어났나요?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왕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이 빈번해졌다고 배우는데, 왜 이 시기에 이렇게 정치적 혼란이 심해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신라는 계급사회로, 태어났을때부터 정해지는 품계인 골품제에 따라서 직급이 정해졌습니다. 왕은 원래 성골 출신만이 왕이 가능하였으며, 그 아래인 진골은 원칙적으로는 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골이 점점 없어지면서 점차 성골 출신 왕이 나오기 힘들어졌고, 성골 출신의 여왕까지 지난 이후에는 성골이 없어지다 시피 하여 무열왕부터는 진골 출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성골은 매우 희박하였지만 진골은 상당히 많았기에, 이후 신라 왕족들 사이에서는 (나도 왕이 될 수 있겠다) 하는 풍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후기로 갈수록 왕권도 약해져갔기 때문에, 힘이 있는 다른 진골 출신 왕족이 왕의 자리를 찬탈하면서 왕위 쟁탈전이 계속 일어났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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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무열왕의 즉위와 삼국 통일 전쟁으로 무열계 직계가 집권하면서 전제 왕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혜공왕 이후 무열계 왕위가 무너지면서 왕위 계승권을 놓고 여러 진골 귀족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신라 상대에는 성골 귀족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진골 귀족 출신이 왕위에 오르자 왕위 계승 대상자가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중대에는 무열계의 강력한 왕권으로 인해 내물계의 다른 가문들은 계승권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점차 왕권이 약화되고 혜공왕 이후 무열계의 왕위 계승권이 무너지면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던 내물계의 많은 진골 귀족들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 것입니다. 또한 골품제의 폐쇄성으로 정치 참여가 제한되고, 농민 몰락과 지방 세력의 성장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도 약해졌습니다. 그 결과 왕위가 안정적으로 세습되지 못하고 귀족들의 반란과 왕위 교체가 반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