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은 조선에게 사대와 군사협력을 요구하였지만 이를 거부한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조인 광해군대에는 실리외교를 통해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으나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정권은 이를 벗어나 청을 배척하고 명나라에 온 정성을 다합니다. 이른바 임진왜란때에 은혜를 잊지 말아야한다는 '재조지은'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욱 두터워졌습니다.
병자호란은 불과 3개월정도로 벌어진 전쟁이었으나 이미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군주인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청나라에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습니다.
삼배구고두라고 하여 청나라 황제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찧는 소리가 날정도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또한이로 인해 많은 조선인이 포로로 잡혀가고, 조선의 자주권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