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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0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누구인가요?

지금처럼 생활체육이 발전하기전인 예전에는 한국이 금메달을 따기란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예전에 금메달을 땋을지 궁금해서요.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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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국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의 레슬링선수 양정모 입니다.

    1976년, 양정모는 대한민국이 광복한 후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안고 금의환향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반응은 뜨거웠고, 전쟁의 상처로 최빈국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이 이제 전 세계 1위를 배출할 정도의 체육 강국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거리에 넘쳐흘렀지요. 양정모는 국민들의 환영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나섰고, 이후 한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양한 체육계 투자가 이어졌으며, 지금 대한민국의 체육 영웅들의 시초가 바로 양정모였던 것입니다.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23.02.21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의 최초의 금메달 리스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에서의 양정모 선수입니다.

    당시에는 레슬링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 토너먼트 식이 아닌 벌점 합계 채점제라는 특이한 방식이었습니다.

    1976년 7월 31일 캐나다 몬트리올 모리스리처드 경기장. 금메달 결정전에 양정모 선수가 결선리그에 올라서, 한국 양정모, 몽골 오이도프, 미국 진 데이비스가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양정모는 진 데이비스를 폴승으로 제압했고, 오이도프는 진 데이비스에게 판정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이도프는 양정모의 최대 라이벌이었습니다. 아주 강한 상대였다고 합니다.
    양정모는 오이도프에게 맞대결에서 패했지만 당시 채점은 기술을 당한 선수에게 벌점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어깨가 바닥에 닿는 폴패(敗)는 4점, 판정패는 3점이었다. 양정모는 오이도프에게 지더라도, 폴패만 하지 않으면 우승이 확정돼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심판은 오이도프의 팔을 번쩍 들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의 승자인 오이도프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경기에서 패배한 양정모는 너무나도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양정모가 오이도프와의 맞대결에서는 패배하였으나, 폴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승리그 벌점 합계 3점으로 오이도프보다 1점이 적었기 때문에 금메달 주인공은 양정모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우리 나라는 심권호와 같은 그랜드마스터를 배출할만큼의 레슬링 강국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손기정 선수로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2의 신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레슬링 : 양정모입니다


    마라톤의 손기정선수는 우리나라사람이 분명하지만

    일제시대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대표로 출전했기때문에 한국최초의금메달이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아마도 마라톤의 손기정 선수 입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적으로 출전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