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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23.11.19

교황이 어떻게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나요?

중세 유럽에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군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던게 아니었나요?

교황이 가진 권력 중에 하나가 군대 동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교황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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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23.11.19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시대의 교황은 군대를 동원하여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었고,

    15세기에는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여 교황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교황의 절대적인 권한이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9세기 경에 이르러 교황의 권세와 영향력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황제와 귀족들은 앞장서서 기독교를 지원하는데 앞장서며 그 권위를 인정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힘이 더욱 커진 기독교는 105대 교황인 니콜라오 1세에 이르러 "교황의 권위가 모든 교회와 국가 위에 있다"고 선언할만큼 막강한 위세를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교황은 이를 이용하여 대관식을 일부러 기피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파문(기독교인의 자격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국왕을 압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중세 시대에는 교회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 입니다. 1077년 1월경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카노사 성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파문을 취소해 달라고 관용을 구한 사건이데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교황과 대립하던 하인리히 4세는 힘겹게 교황을 직접 찾아가 추위 속에 누추한 옷과 맨발로 성문을 두들기며 파문 철회를 애걸했다고 합니다. 그레고리오 7세는 3일만에야 성문을 열고 하인리히 4세의 파문을 철회해줬습니다. 이 사건은 교황의 권세가 세속의 지배자인 황제보다도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