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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05

목화는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인가요?

목화는 우리나라에 전해져 서민들의겨울철. 의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요. 이 목화는 언제 누가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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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절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이것을 가지고 온 것으로 유명했지만, 2010년 백제 시대의 면직물이 출토되면서 목화 도입의 원조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목화는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인 인도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만큼 장마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와는 잘 맞지 않아 극소수만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희소성으로 인해 그 용도 또한 높으신 분들의 사치품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당장 면직물 유물이 출토된 곳을 보면 절터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왕실이나 귀족의 원찰이었다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 그리고 백제 이후로도 삼국사기 색복지를 보면 통일신라 중기 사람들의 복식으로 견직물, 삼베, 소가죽 등이 주로 언급되고 있으므로 문익점 이전에 면직물이 존재했다 쳐도 그다지 대중적이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북아시아 기후에 맞게 개량된 퍼진 중국제 종자를 들여와 서민 계층에 대중화한 것은 여전히 문익점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로 덕분인지 조선 시대에는 공신으로 꼽혔다.

    다만 위인전에 나오는 것처럼 붓두껍에 숨겨서 목숨 걸고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문익점의 목화와 관련해서 3대 거짓 정보가 있는데, '중국의 강남으로 3년간 유배', '붓두껍', 그리고 '목화는 수출 금지 품목'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들이 점점 부풀린 케이스. 세종, 세조실록에서도 이 이야기는 많이 인용되고 있으니 전형적으로 성공한 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 나무위키 목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목면도입은 공민왕 13년(1364)에 문익점이 원으로부터 목면씨를 가지고 온 것을 최초로 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당대에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즉 우왕 원년(1375년)에 문익점을 목면도입의 공으로 典客主簿에 임명하고 있으며 조선에 들어와서도 태종 원년(1401)에 목면전래의 공으로 그의 아들에게 벼슬을 내린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고려말부터 국가는 정책적으로 목면보급에 힘썼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그런데 과연 문익점이 목면의 최초 도입자인가는 의문이 급니다. 왜냐하면 문익점 이전에도 원나라와의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목면이 고려에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 입니다. 더군다나 원나라에서 목화는 금지 품목도 아니었습니다.


  • 목화는 원래 남미나 중미, 그리고 인도 등에서 주로 재배되던 식물로, 그 정확한 기원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목화의 재배와 관련된 유물들은 기원전 5,000년부터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기원전 3,000년경 멕시코에서 발견되었는데요.

    목화가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전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시대 무덤에서 목화로 만든 천이 발견된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1,500년 전에는 목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화는 전통적으로 의복재료로 사용되었고, 그 특성상 여름용 옷감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겨울용 옷감으로 사용되는 것은 깎은 목화를 솜처럼 만들어 옷의 충전재로 활용하였습니다. 이처럼 목화는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