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계홍 의사입니다.
4~5년 동안 삼시세끼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목살, 삼겹살 등 다양한 육류를 거르지 않고 다량 섭취해 오신 상태에서, 어느 순간부터 변에 흰색 기름 성분이 묻어나오는 지방변을 보는 횟수가 부쩍 늘어나고 증상이 심해져 이것이 단순히 지방질 과식에 의한 정상적인 생리 반응인지 아니면 반드시 의학적인 질병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해하시는 상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화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지방을 섭취했을 때 일시적으로 지방변이 나오는 것은 정상적인 신체 반응으로 볼 수 있으나, 현재처럼 수년에 걸친 만성적인 고지방 식습관으로 인해 지방변의 빈도와 정도가 심해졌다면 이는 췌장이나 담도계의 소화 효소 분비 능력이 고갈되었거나 장 점막의 흡수 기능에 이상이 생겼음을 시사하는 병적 징후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매일 좋아하는 고기를 맛있게 드셔왔을 뿐인데 소변이나 대변의 형태가 변하고 증상이 점차 심해지니 혹시 내 소화기관에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무척 불안하고 걱정되실 그 마음에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질문하신 지방 과식과 질병의 경계에 대해 의학적으로 명확히 짚어드리겠습니다. 우리 몸이 섭취한 지방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기름을 잘게 쪼개고, 췌장에서 분비되는 리파아제(Lipase)라는 소화 효소가 이를 최종 분해하여 소장 점막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감당하기 힘들 수준의 폭식을 하여 지방 섭취량이 이 소화 효소들의 처리 용량을 일시적으로 넘어서면 흡수되지 못한 기름이 대변으로 그대로 밀려 나와 기름 띠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분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지난 4~5년간 매 끼니 기름진 육류를 지속적으로 섭취해 오면서 췌장과 담낭은 쉬지 못하고 과도한 소화 효소를 쥐어짜 내듯 분비해 왔을 것입니다. 이러한 만성적인 과부하가 지속되면 췌장 세포에 미세한 염증이 반복되거나 효소 분비 기능 자체가 지쳐서 떨어지는 췌장 외분비 기능 부전(Pancreatic exocrine insufficiency)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예전에는 과식했을 때만 일시적으로 나오던 지방변이 이제는 췌장 기능 저하나 장 점막의 만성 염증으로 인해 빈번하게 나타나는 질병의 신호로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를 단순히 고기를 많이 먹어서 생기는 당연한 결과로 치부하고 방치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현재 가장 의심되거나 감별이 필요한 임상 상태는 장기간의 고지방 식이 과부하에 따른 췌장 외분비 기능 부전 또는 만성 췌장염(Chronic pancreatitis) 초기 징후, 혹은 흡수 불량 증후군 상태입니다. 췌장과 담도계의 소화 효소 분비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장 점막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방문하셔야 할 진료과는 내과 또는 소화기내과입니다. 진료과에 내원하면 하는 검사들로는 대변 속에 소화되지 않은 지방 세포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현미경으로 확인하는 대변 지방 검사 및 대변 내 엘라스타제(Elastase) 수치 검사가 시행되며, 췌장과 담낭, 담관의 구조적 변화나 염증 여부를 시각적으로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한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CT) 또는 복부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병원에 내원전 셀프로 할 수 있는 조치 요령은 냉장고에 채워둔 삼겹살, 닭다리살 등 기름진 육류 섭취를 오늘부터 즉시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이고 닭가슴살 위주의 담백한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위주로 식단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며, 지방 소화에 도움을 주는 시판 소화제(췌장 효소제가 함유된 알약)를 식사 직후에 복용하여 가스가 차거나 대변이 묽어지는 증상이 완화되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장내 환경 개선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 주셔야 합니다. 30대의 젊은 연령이더라도 장기간의 편식은 소화 장기에 구조적 변형을 유일하게 유발할 수 있으므로, 조속히 소화기내과를 찾아 췌장 성적표를 확인해 보시는 것이 소화기 건강을 평생 지키는 가장 올바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