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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비비123
풀리비비12323.02.06

조선시대 내시들은 정말 거세를 한건가요?

조선시대때 내시들이 있잖아요.

내시는 남자가 거세를 해서 얇고 높은 목소리를 내면서 궁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있는데요.

정말로 거세를 한건가요?

그 당시 의료기술로 거세를 하고도 부작용이나 사망 사례는 없었나요? 굳이 거세를 한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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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0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내시는 궁궐 내에 위치하여 왕의 허드렛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궁녀를 비롯해 후궁들과의 만남이 잦았는데요. 만남이 지속되면 사랑도 싹 트이는 법이라 혹시나 그녀들을 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세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 당시 궁궐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은 왕의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왕의 여자를 탐한 내시들도 역사가 기록된 서적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시는 고려시대와 달리, 왕을 보필하면서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관직입니다. 상선정도의 내시가 되면 정승판서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파워가 강력했다고 하는데요. 그 힘이 강력해지고 자식까지 낳으면 세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 거세 시켰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 가족이 생기면 왕을 보필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거세시켰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 당시 거세는 화학적 거세가 아닌, 물리적인 방법으로 거세를했습니다. 의학이 발달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절반 이상이 죽었을 정도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하네요. 이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명주실을 이용해 썩게 만들어 거세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궁형을 실시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국가에서 강제로 거세한 경우는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고로

    인한 것은 주로 어린아이가 변을 보다

    개에게 물린 경우가 많았다. 자궁은

    명주실을 어린 아이의 고추에 칭칭

    감아 피가 통하지 않게 한 후 저절로

    썩어 떨어져 나가게 하는 방법이 주로

    동원되었다.


    -출처: 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거시를 해야지 궁 안에서 불륜이나 금지하는 데이트 결혼 등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영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내시는 가난한 집에서 부모가 어린 자식을 거세해 궁궐에 들여보내 자식덕을 보는 경우, 먹고 입을 걱정 없고 출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거세하는 경우 등이 있었습니다. 거세를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것인데 당시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두 사람에 한 사람은 죽을 만큼 아주 위험한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남자의 고환을 없애는 방법인데 고환을 없애면 아이를 낳을수 없기 때문에 거세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은 얻지 못해도 내시들도 첩을 거느렸고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거세라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내시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로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또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왕들이 거주하는 궁궐에는 후궁들과 수많은 왕의 여인들인 궁녀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내시 또는 환관들이 궁에서 일하는 동안 이들과 바람이 나는것을 막기 위해 거세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환관과 내시는 밑천한 신분인 사람이 큰 권력을 얻을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을 얻기위해 스스로 고자가 되어 내시가 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