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와 사람의 기원은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 역성혁명을 놓고 나뉘는 혁명파 신진사대부와 온건파 신진사대부에서 기원합니다. 혁명파 신진사대부들은 조선 건국에 직접 참여하면서 15세기 중앙 정권을 차지하였으며, 특히 세조의 즉위 과정에서 훈구가 성장합니다. 반면 사림은 조선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향촌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종 대 훈구를 견제하기 위해 3사를 중심으로 사림이 진출하고, 훈구와 대립하면서 사림파로 집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종 사후인 연산군 때부터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사화가 발생하고 사림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비록 사화를 거치면서 사림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선조 때 정권을 잡은 사림은 정파와 학파적 성향을 바탕으로 제한된 관직을 놓고 동서로 나뉘어 붕당이 형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