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오리고기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 했나요?
가족 외식으로 오리고기를 먹다 보니 문득 우리나라 역사상 오리고기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궁금해 지네요 역사적 기록된 내옹이 있다면 알려주세여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식용으로 키워온 닭과 달리 한반도에서 오리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생각보다 식용 역사가 짧은 고기이다. 그 이전에는 사냥해서 잡아먹는 요리취급이었고, 닭이나 개고기에 비해서 귀한 요리였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잘 먹었다. 20세기에는 손님이 오면 타 지방에서 닭고기를 내오듯 오리고기를 내오는 경우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우리말로 오리·올이·올히로 불렸으며, 한자로 압(鴨)이라 하였다. 압은 집오리, 부(鳧)는 물오리라고도 하였다. 압은 서부(舒鳧)·가부(家鳧)·말필(0x9635鴄)·목(鶩)이라고도 하였고, 부는 야압(野鴨)·야목(野鶩)·침부(沈鳧)라고도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속의 아압변증설(鵝鴨辨證說)에는 “오리[鴨]에도 역시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집에서 기르는 것도 있고, 야생인 것도 있다.”고 하였으니 오리를 넓은 의미로 쓴 예이다.
집오리는 원래 야생인 청둥오리를 중국에서 가금화(家禽化: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으로 바꿈)한 것인데,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에도 오리가 있었고, 일본에는 3세기에 오리가 전래된 것 같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오리를 기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또한 고려의 싸움오리[高麗鬪鴨]이야기도 있다. ≪재물보≫에는 집오리의 수컷은 머리가 녹색이고 날개에는 무늬가 있으며 암컷은 누렇고 얼룩진 색이라 하고, 물오리는 집오리와 비슷하나 이보다 작고, 청(靑)과 백이 섞인 색이고, 부리는 짧고, 다리는 작다고 하였다. ≪재물보≫와 ≪물명고≫에는 집오리와 물오리 이외에 계칙(鸂鷘:비오리)·벽제(鷿鵜:되강오리)·원앙(鴛鴦, 元央)도 기록되어 있다.
≪지봉유설≫에는 닭과 오리는 가축이어서 잘 날 수 없고, 그 밖에 들에서 사는 새들은 모두 잘 날 수 있다는 송나라 왕규(王逵)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내가 집오리를 보건대, 이것을 들의 물에서 오래 놓아 기르면 멀리 잘 날 수 있다. 아마도 가축이 잘 날 수 없는 것은 마시고 쪼아 먹는 것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라 하였다.
≪전어지≫에는 여러 가지 문헌을 인용하여 집오리를 기르는 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규합총서≫의 산가락(山家樂)에는 집오리의 알 안기와 새끼를 기를 때의 주의해야 할 일이, 청낭결(靑囊訣)에는 “오리고기와 알을 먹으면 아기를 거꾸로 낳고 심한(心寒)하고, 오리알 삶을 제 귤 뿌리를 넣으면 붉어진다. 달걀과 오리알에 쇠똥물로 그림을 그려 삶으면 푸른 것이 속까지 박힌다.” 등의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집오리의 기름·피·머리·알·흰오리고기·흰오리똥·검은오리고기의 성질과 약효를 적었다. 또 들오리의 고기는 “성이 양(凉)하고 독이 없다. 보중(補中) 익기(益氣)하고 위기(胃氣)를 화(和)하고 열·독·풍 및 악창절(惡瘡節)을 다스리며 배 내장의 모든 충(虫)을 죽인다. 9월 후 입춘 전까지 잡은 것은 크게 보익하며 집오리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조그마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도압(刀鴨)이라 하며 맛이 가장 좋고 이것을 먹으면 보허(補虛)한다.”고 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리 고기는 삼국 시대 부터 먹기 시작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인 이규경의 < 오주연문장전산고> 라는 책에 의하면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오리를 길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려 시대에는 닭싸움 처럼 오리끼리 싸움을 하게 만드는 경이인 < 투압> 경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리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생각보다 식용 역사가 짧은 고기입니다. 그 이전에는 사냥해서 잡아먹는 요리취급이었고, 닭이나 개고기에 비해서 귀한 요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