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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시대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았나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들어선 이승만 정권시대에는 우리 땅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을거 같은데.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았을듯 합니다.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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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돼 있으며, 김정수 CP가 기획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1부는 '개화와 독립', 2부는 '건국과 분단', 3부는 '6.25와 4.19'로 각각 구성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선 이승만이 미국과의 원조 협상에서 기선제압식으로 성사시켜 외교 주도권도 양보 못할 사람으로 그려 친미주의자 프레임을 벗었고, 원자력의 필요성을 제창하고 과학자를 키운다거나 의무교육을 확대시킨 점, 반공포로 석방을 지시한 점 등의 공적을 많이 다뤘다. 물론 손세일이나 유영익 등과 같은 이승만에 긍정적인 인물들 중심으로 인터뷰가 나오지만,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김삼웅이나 주진오, 브루스 커밍스 그리고 김동춘 등의 인물들의 입장과 인터뷰도 보여주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이승만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농촌의 경작 체제를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 시켰는데,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과잉생산이 발생합니다.때마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군들이 참전하게 되면서 잉여농산물은 군인들의 식량으로 소비되었으며 전후에는 군사동맹을 내세운 서유럽으로의 농산물

    수출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합니다.하지만 전후 프랑스와 독일은 3년이 되지 않아 전쟁으로 망가진 농촌을 복구하며 점차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줄여가게 됩니다.그런 와중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 잉여농산물의 또 다른 소비처가 되었지만 휴전 이후에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했죠.

    1954년 7월 미국 의회는 PL-480호를 제정했습니다. 이 법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의 빈곤층 원조,재해구제 원조,그리고 학교급식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엇죠.

    1955년 이후 한국의 국민학교 식빵과 밀가루가 무상으로 공급되엇습니다.교사들 손에도 악수 그림이 그려진 원조 밀가루 부대가들렸죠.이때부터 밀가루를 재료로 한 수제비,칼국수,잔치국수와 같은 음식이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끼니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네에 맞습니다. 미국은 1953년에 만들어진 '대외활동본부’(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 FOA)를 통해서 대한 경제원조를 지속했다고 합니다. . FOA는 1953년 7월 1일부터 1955년 6월 30일까지 2년 동안 총 14억 달러를 대한민국에 원조했는데, 이중에 5억 6천만 달러가 경제원조이고, 8억 4천만 달러는 군사원조였다고 합니다. 경제원조는 주로 생필품과 경공업 기계류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55년 하반기 부터는 '국제협조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ICA)가 FOA의 대한 원조업무를 인계받았고, 1955년 하반기에 2억 8천만 달러를 집행하였다고 합니다. 1945년 해방이후 1960년 4.19까지 미국의 대한(對韓) 원조 총 금액은 약 28억 달러였는데 미국이 제공했던 막대한 금액의 원조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유지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 구축으로 연결되지 못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