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정종의 묘는 왜 북한에 있나요?

조선시대 왕들의 묘는 대부분 당시 수도였던 한양이나 어찌되었든 다 현재 우리나라 영토에 있는데 정종의 묘는 북한 개성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유독 정종만 개성에 있는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조선 왕 정종의 묘는 왜 북한에 있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정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 과거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세상도 그곳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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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개성이 그 당시 수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나라였기 때문에 왜 북한에 있는지는 삼팔선 그으신 뷴들한테 여쭤보시면 되게ㅛ습니다

  • 안녕하세요, 질문자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대부분 서울이나 경기도(구리, 여주, 고양 등)에 모여 있죠.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유독 제2대 왕 정종과 그의 비 정안왕후가 묻힌 '후릉(厚陵)'은 현재 북한 땅인 황해북도 개성시(판문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정종 개인의 정치적 정체성과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얽혀 있습니다. 그 명확한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정종에게 개성은 '실제 수도'이자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조선의 첫 수도는 태조 이성계가 정한 한양(서울)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종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이방원(태종)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 권력 다툼으로 한양의 궁궐이 피로 물들자, 왕위에 오른 정종은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고 동생 이방원의 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조선의 수도를 다시 고려의 옛 수도였던 '개경(개성)'으로 옮겼습니다(1399년).

    • 정종이 임금으로 재위했던 2년 동안 조선의 실제 수도는 한양이 아니라 개성이었으며, 정종은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도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개성의 인덕궁에서 머물다 그곳에서 승하(1319년)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가장 오랫동안 숨 쉬고 사랑했던 개성에 묻히는 것은 당시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2. 승하 당시 '조선의 국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정종의 묘가 홀로 개성에 남겨져 잊히게 된 가장 결정적인 제도적 이유입니다.

    • 정종은 왕위를 동생 이방원(태종)에게 물러준 뒤 '상왕'으로 지내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조선 조정이 오랫동안 그를 정식 국왕으로 대우하지 않고 '공정대왕'이라는 모호한 칭호로만 불렀다는 점입니다.

    • 세월이 흘러 세종, 성종 대에 이르러 왕릉을 정비하고 종묘를 가꿀 때도 정종은 정식 '묘호(종, 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왕릉을 한양 근처로 이장(옮겨옴)해야 한다는 논의에서 완전히 소외되었습니다.

    • 정종이 승하한 지 무려 262년이 지난 숙종 대(1681년)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종(定宗)'이라는 정식 왕의 이름을 얻고 무덤도 '후릉'이라는 왕릉의 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백 년이 지나 개성에 완벽히 자리를 잡은 묘를 한양으로 다시 옮기기에는 명분과 비용 면에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3.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비극

    만약 조선 시대에 그대로 개성에 있었다 하더라도 통일된 국가였다면 우리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었겠지요.

    • 조선왕릉 42기 중 40기는 대한민국 영토(서울/경기/강원)에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북한 개성에 위치한 정종의 후릉(厚陵)과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무덤인 제릉(齊陵) 2기는 분단선 너머에 고립되는 바람에 세계문화유산 신청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 요약하자면

    정종의 묘가 북한에 있는 이유는 ① 정종이 한양을 떠나 개성에서 왕 노릇을 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② 조선 중기까지 정식 왕으로 대접받지 못해 묘를 옮길 타이밍을 놓쳤고, ③ 현대에 이르러 국토가 분단되는 바람에 우리가 갈 수 없는 북한 땅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입니다.

    비운의 왕이었던 정종의 삶만큼이나 그의 무덤 역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홀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질문자님의 역사적 궁금증을 푸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