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헌신하셨는지, 글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지금 느끼시는 감정들, 짜증, 미안함, 우울함, 이것들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너무 오래, 너무 많이 혼자 감당해온 분이 당연히 겪게 되는 반응입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지금 상태는 '돌봄 제공자 소진(caregiver burnout)'이라고 부릅니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를 가지고 계신 상태에서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기저질환 조절이 실제로 더 어려워지고 심혈관계 위험도 올라갑니다. 몸이 안 좋다고 하신 것이 단순한 피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은 사실 어머니가 아니라 본인이십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하셔야 할 것은 경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동생이 모시겠다고 한 이상, 연락이 올 때마다 응하는 구조를 지금 끊지 않으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몸 상태로 더 이상 주 케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명확히 전달하고, 가능하다면 형제자매가 모여 역할을 문서로라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양원이나 주야간보호센터 같은 공적 돌봄 체계를 활용하는 것도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90세 치매 어르신을 가족이 전담하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닙니다. 장기요양등급이 이미 나와 있다면 등급에 맞는 시설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시고, 아직 신청 전이라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하시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우울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본인의 정신건강도 진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나 가정의학과에서 현재 상태를 한 번 평가받아 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엄마를 18년 돌본 딸이 지쳐서 진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