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서의 난은 광해군 당시 충청도 충주 출신 서얼 박응서 등이 주도로 서얼 차별에 불만이 폭발한 사건입니다. 조선은 서얼이 법적으로 문과에 응시할 수 없어 관직 제출에 제한되었습니다. 박응서를 비롯한 7명의 서얼이 주도하여 경기도 여주 강변에서 당파를 결성하고 무장을 준비했으나 충주의 서재에서 상인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었습니다. 사건은 계축옥사로 주동자가 처형되고 서얼이 차별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대북파는 정적을 제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