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증상은 얼굴 심상 결핍(Aphantasia, 아판타시아)의 특징에 매우 잘 부합합니다.
아판타시아는 머릿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능력이 현저히 약하거나 없는 상태입니다. 2015년 Exeter 대학의 Adam Zeman 교수 연구팀이 처음 명명했고, 일반 인구의 약 2에서 4%가 해당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결코 드문 이야기가 아니에요.
핵심은, 인지 자체는 멀쩡하다는 겁니다. 막상 얼굴을 보면 즉시 누군지 알아본다고 하셨잖아요. 이건 얼굴 인식을 담당하는 방추상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 등 지각 회로가 정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아판타시아는 이 지각 회로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 정보를 자발적으로 재활성화하는 심상(mental imagery) 생성 능력의 차이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머리카락 길이, 특징, 행동" 같은 언어·서술 기억이나 운동 기억으로 보완하는 방식은 아판타시아를 가진 분들이 매우 흔하게 보이는 전략입니다. 뇌는 시각 심상이 약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인지 경로로 우회합니다.
주의력 결핍과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친구분의 해석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묘사하신 증상의 핵심은 주의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각 심상의 생성 방식 자체가 다른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공존하는 경우도 보고되긴 하므로, 일상 기능에 다른 불편이 있다면 그건 별도로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기저질환 없고 30대 남성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이 자체가 병적인 상태이거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일상 인지 기능, 대인 인식, 업무 수행에 뚜렷한 지장이 없다면 개인 인지 특성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하시는 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