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호는 '연암'입니다. 그는 1777년 정조 즉위년 홍국영의 세도 정치로 인해 노론 벽파로 몰리며넛 정치적 위협을 느겼습니다. 이로 인해 신변의 안전을 위해 황해도 금천의 외진 골짜기인 연안협으로 은거했습니다. 연암협은 동구 좌측의 절벽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제비바위'라는 뜻의 연암으로 불렸습니다.
박지원은 이곳에서 직접 농사도 지으며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1780년 홍국영이 실각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호를 연암하여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