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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과학도시 이미지를 언제부터 가졌나요?

대전에는 옛날 1990년대 초 엑스포 박람회도 개최하고 한국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도 있자나요 어떻게 과학도시 이미지를 가지게 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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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명주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대덕연구단지의 조성이 기여를 하였습니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연구기관과 연구소들이 대전에 설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과학도시 이미지를 갖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인태성 경제전문가입니다.

    질문해주신 대전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AIST) 가 설립된 것이 1981년입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 대전이 과학도시의 이미지를

    쌓아올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 안녕하세요. 김민준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 것은 1973년 대덕연구단지 건설 입지로 선정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1970~80년대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속속 입주했고,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로 과학도시 위상이 확립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강일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계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덕연구단지 조성과 1990년대 초 대전엑스포(1993년 대전세계박람회) 개최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대덕연구단지는 1970년대 초 정부가 포화 상태인 서울의 홍릉연구단지 대신 제2 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당시 허허벌판이던 충남 대덕 일대에 연구소와 대학을 집적시키는 방식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주요 연구기관과 정부출연연구소가 대전으로 이전하거나 설립되었고, 대한민국 이공계 박사의 10분의 1이 대덕연구단지에 몰려드는 등 과학기술 인재가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이 국민적 관심과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된 계기는 1993년 대전엑스포입니다. 이 박람회는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주제로,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을 부제로 삼아 열렸습니다. 전 세계 108개국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로, 대전이 과학기술의 중심지임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습니다. 엑스포 이후 대전은 과학도시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고, KAIST와 대덕연구단지 등은 대전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인프라로 자리잡았습니다.

    즉, 대전은 1970년대 대덕연구단지 조성과 연구기관 집적을 시작으로,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를 통해 과학도시 이미지를 국민과 세계에 각인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하성헌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라고 불린것은 대전엑스포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1970년대에 정부에서의 과학기술의 중심지로 대전을 밀면서 그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전에 대덕연구단지를 하나의 밸트로 과학기술집약체로 만들면서 서울에 응집한 인구를 분산시키면서, 지역의 균등발전을 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정책으로 1970년대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대전은 1970년대 후반 대덕연구단지를 조성으로함으로써 과학기술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KAIST와 여러 국책 연구기관이 들어서면서 과학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과학도시’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 정부는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확대하면서 과학기술 중심 도시로 발전시켰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창현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게 된 것은 주로 1970년대 대덕연구단지 조성과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라는 두 가지 큰 전환점을 통해서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던 1970년대 초반, 대덕연구단지 건설 계획이 수립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정부는 국가의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핵심 연구기관들을 한곳에 집적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서울에 연구소들이 분산되어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하에,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주변 환경이 연구에 적합한 대전을 최적지로 선정했습니다. 대덕연구단지에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인력과 연구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대전은 자연스럽게 '연구의 도시', '과학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직 덜 알려졌을지라도,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미 대전이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종우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갖게 된 건 1970년대 대덕연구단지 조성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카이스트, ETRI 등 국가 핵심 연구기관이 대전에 몰리면서 과학기술 중심지로 부상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는 대전의 과학도시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확산 시킨 전환점이 되었죠.

    지금도 대덕특구는 국내 과학기술의 심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정현재 경제전문가입니다.

    대전이 과학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이유는 대전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등 모두 26개의 출연연구원이 들어서 있고, 말씀하신 엑스포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력과 성과를 알리기 시작하며 과학 도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