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예송논쟁은 왜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그렇게 큰 정치적 다툼이 됐나요?

조선 후기 예송논쟁을 배우는데 왕실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크게 대립했다고 들었어요. 단순한 예법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한 정치적 갈등으로 번졌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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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리학을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는 조선은 국가 질서를 예로 정리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송논쟁은 성리학적 원칙을 왕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논쟁으로 학문 논쟁인 동시에 정치 투쟁입니다. 특히 효종과 효종비의 상에서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상복을 어떻게 입느냐를 놓고 효종을 장자, 또는 차자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됩니다. 이는 왕의 지위와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 문제로 발전한 것입니다.

    당시 서인은 국왕도 사대부의 준하여 효종을 둘째 아들로 본 것이고, 남인은 효종을 국왕의 지위에 맞게 장자의 지위를 인정해야 해서 해석한 것입니다. 즉, 이 논쟁은 단순한 복상 규정이 아니라 왕을 일반 사대부와 같은 수준으로 볼 것인가, 더 특별한 존재로 볼 것인가를 둘러싼 충돌이었습니다.

    이는 상복 문제를 빌려 국왕의 정통성과 정치적 우위를 놓고 서인과 남인의 정국 주도권을 놓고 벌인 대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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