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양반들은 왜 한글보다 한문으로 문학작품을 더 많이 남겼나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조선 지식인들이 한문으로 시와 산문을 많이 썼다고 배우는데, 왜 자국 문자가 있는데도 한문학이 계속 주류를 이뤘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한자를 어릴 때 부터 교육을 받았고 일반 서민들과 차별화 되는 것이 바로 문자의 힘이라고 믿었던 기득권 세력이였습니다. 한자를 많이 알고 그 것을 이용해서 과거를 보고 권세를 얻는 것이 자신들의 특권이라고 생각 하다 보니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한글은 무시 하게 되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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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다른 분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답변드려 보겠습니다.

    현대 연구자 들도 국제적으로 발표할 논문이면 다들 영어로 작성하죠?

    그거랑 똑같은 겁니다.

    당시 동아시아권에서 한자란 모든 지역에서 어느정도 통하는 국제 언어이며
    문명의 최첨단인 명나라,청나라에서 사용하는 일상어 였죠.

    또한 한자의 난이도 자체가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자를 쓰는 것으로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편한 훈민정음은 계속 쓰였고
    조선후기에는 알음알음 한글작품들이 유명해지기 시작 했죠.
    하지만 양반이 한글작품을 만들었다고 스스로 밝히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건 요즘 한국에서 순문학이랑 장르문학이 따로 구분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최신 대중 문화=천박함,학문에 집중하지 않고 한눈파는 짓
    이란 분위기가 있던 것이죠

  • 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한문은 양반 신분을 드러내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일반 백성들이 배울 수 없는 문자여서 지배와 피지배를 드러내는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시험과 공식문서가 모두 한문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교류에도 한문이 필수였습니다. 한글은 언문이라 폄하하며 한문 능력을 지식인의 척도로 삼았기 때문에 양반들은 기득권 유지와 학문적 권위를 위해 한문 문학을 주로 창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