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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슴새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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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막부시절에 가톨릭교를 탄압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에도막부시절에 지도자들은 쇄국정치를 하고 천주교신자나 가톨릭교를 철저의 탄압을 해왔는데 당시 이런 자세를 고수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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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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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크리스트교 교리가 봉건 윤리와 충돌하여 통일 정권인 에도 막부에게 위협이 되었습니다.

    가톨릭교는 이교에 대해 강력히 배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와 유교에 대립하여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단결은 막부와 다이묘에게 위협적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과는 다르게

    과거의 나라에서 상업은 쓸데없는 돈을 갈취하는 중간과정에 불과하고

    무역은 부를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선 중상주의라 해서 영지단위로 세금을 뜯어갔고

    동아시아는 중국과의 조공무역과 일부 밀무역만이 남아있었죠

    더군다나 명, 청 시기에는 해금령이라하여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좀 떨어져있던 일본은 서양과의 무역의 이점을 알아차리고

    무역을 하긴 했지만, 그것또한 섬 한곳에서 통제된 제로 이루어 졌죠

    기독교의 경우,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세상의 왕 타이틀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지는 전통성과 각종 사고를 통해 정교분리가 이뤄진 서양과는 다르게

    동양은 유교도 불교도 통치구조의 일부가 되는 식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이런 기본 세계관 차이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학습과 설득을 거쳐야 해결되는 문제고

    종교, 그것도 본거지가 해외에 있어서 통제도 안되고 정보유출 우려가 있는 종교에

    그런 많은 노력을 굳이 쏟으려는 지배계층은 아시아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천왕이 민간신앙의 숭배를 받아 지배명분을 획득하고

    실제 통치는 쇼군이 하는 식의 구조가 이미 정착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예수라는 천황 위의 존재가 끼어들게 되면

    지배구조에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도시대 이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때 이미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고

    실제로 키리시탄들이 시바라마의 난을 통해 자기들의 위험성을 증명해 버렸기 때문에

    에도시대엔 키리시탄=반란분자=처형 라는 이미지가 정착된 것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도 막부 시대에 가톨릭교를 탄압한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가톨릭교가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인 신도(神道)와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신도는 일본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종교로, 일본의 국교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는 유럽의 종교로,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한, 가톨릭교는 일본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과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서양과

    교류하게 되면 결국 자기들의 권력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막부정치의

    생명이 끝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교류를 단절

    했습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