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8에 계엄군은 광주에만 배치된 것이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대도시와 대학에 모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신군부는 정권을 잡기 위해 전국의 민주화 열기를 잠재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광주에서 비극이 터졌을까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굴복하지 않은 도시: 5월 17일 밤, 신군부는 김대중, 김영삼 등 민주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은 군대의 위세에 눌려 순간적으로 숨을 죽였지만, 광주의 대학생들은 5월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정문 앞으로 나와 휴교령 철회와 계엄 해제를 외치며 당당히 맞섰습니다.
초전박살을 노린 공수부대의 투입: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에 걸림돌이 되는 광주의 시위를 초기에 완전히 뿌리 뽑고자, 일반 군인이 아닌 무자비한 '충정훈련(시위 진압 전문 훈련)'을 받은 특전사 공수부대를 투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