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진 수의사입니다.
어릴 때는 보호자님의 통제와 교육(리드)이 중요했지만, 10살 노령견의 산책은 목적과 규칙이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가 계단에서 멈추고, 고집을 부리는 데는 '나이 듦'에서 오는 슬픈 이유들이 숨어있습니다.
아이가 10살이 되면서 예전과 달라진 모습에 속상하기도 하고, 산책 때마다 밀당을 하니 솔직히 지치고 화가 나시는 마음, 정말 100% 이해합니다. "화내면 안 되는데..." 하며 자책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사람이니까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게 당연합니다.
아이가 "뻐팅기는" 진짜 이유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그래요 (특히 계단)
10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60대 안팎의 장년~노년기입니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관절염, 척추 디스크, 혹은 근력 저하가 시작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계단에서 멈추는 이유: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 관절에 큰 무리가 가기 때문에 '무서워서' 혹은 '아파서' 서 있는 것입니다. 나가고 싶은 마음(식지 않은 열정)은 굴뚝같아서 나왔지만, 막상 몸이 안 따라주니 멈춰 서는 거죠.
• 가고 싶은 길만 가려는 이유: 강아지들도 영리해서 본인이 걷기에 덜 힘들고 익숙한 길(평지, 푹신한 잔디, 경사가 완만한 길)을 본능적으로 선택하느라 고집을 부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인지기능 장애(치매)"의 시작일 수 있어요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거나, 가만히 서서 멍하니 있거나, 평소 잘 듣던 말을 안 듣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지?" 하고 길을 잃었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멈추는 것일 수 있습니다.
노령견 산책, 이제는 이렇게 바꿔주세요
이제는 '보호자가 리드하는 산책'이 아니라, ‘어르신 효도 관광 시켜드리는 산책'으로 개념을 바꾸셔야 합니다. 어릴 때 하던 "치고 나가면 멈추기" 규칙은 지금 나이에는 아이에게 너무 가혹할 수 있습니다.
• 1순위: 계단은 무조건 안아서 이동하기
40kg 대형견이라 안아주기 힘드시겠지만, 계단은 관절을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계단이 없는 코스로 우회하시거나, 경사로를 이용해 주세요. 계단 앞에서는 아이를 억지로 끌지 마세요.
• 산책의 목적을 '운동'에서 '냄새 맡기’로
노령견에게 산책은 다리 운동이 아니라 뇌 운동입니다. 많이 걸을 필요 전혀 없습니다. 5분만 걷더라도 지가 가고 싶은 길로 가게 두고, 냄새를 충분히 맡게 해주세요. 그게 치매 예방과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입니다.
• 원하는 길로 가게 져주세요
"그래, 너 가고 싶은 대로 가자" 하고 맞춰주셨던 게 정답입니다! 주도권을 아이에게 좀 넘겨주셔도 괜찮습니다. 이제 버릇이 나빠질 나이도 아니고, 그저 남은 견생을 행복하게 보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 유모차나 켄넬 활용하기
나중에는 걷는 거리보다 밖의 공기를 마시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겐 큰 활력이 됩니다. 걷기 힘들어하면 유모차에 태워서 바람을 쐬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 "엄마, 나 이제 여기가 좀 아파", "나 이 길은 걷기 힘들어"라고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괘씸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할아버지, 오늘 컨디션이 별로구나" 하고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세요. 산책 시간을 줄이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 동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큰 행복을 느낄 거예요. 체력적으로 힘드실 땐 병원에 동행하셔서 관절 영양제나 진통제 처방을 상담해 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