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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6.25

해태 봉황같은 신비한 동물들은 어디에서 유래된건가요?

우리가 익히 아는 신묘한 동물들에 대한 유래가 궁금합니다.

해태라던지 봉황 용같은 신비로운 동물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데요. 이런 동물들이 만들어진 유래와 쓰임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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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봉황이나 주작은 옛 중국 신화인 산해경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해태는 중국 요 임금 때에 태어났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태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상상의 동물'입니다.

    하지만 그 유래는 중국의 해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해치는 요순시대에 탄생한 상상의 동물로서 해치, 신양, 식죄, 해타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해치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논형(論衡)] '시응편 (是應篇)'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개호라는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은 뿔이 하나밖에 없으며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한다. 고요 (皐陶)라는 사람이 순 임금 때 법관으로 있었는데, 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이 동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들이 받게 하였다. 죄가 있는 사람이면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이면 받지 않았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 (異物志)] 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동북지방의 거친 곳에 사는 짐승을 해치라고 한다. 뿔이 하나에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물어 뜯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해치라는 짐승은 뿔을 하나 가진 동물로서 모습은 양을 닮았으며, 대단히 영물스럽고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령스러운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였고, 만일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뿔로 덤비여 받아 넘기는 '정의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해치의 생김새는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머리 가운데 뿔이 한 개 돋아 있는 일각수로 여겨집니다.

    신선이 먹는 나뭇잎만 먹고 살며 성품이 바르고 곧아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려 내는 신성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상상한 해태는 불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길벗이야기의 해치와 괴물 4형제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그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모습은 산양이나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머리 한가운데에 뿔이 하나 솟아 있습니다.

    이 뿔로 해치는 바르지 못한 사람과 옳지 못한 말을 하는 사람을 들이받는다고 합니다.

    해치라는 이름은 '해님이 보낸 벼슬아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해치는 해의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가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듯이 해치는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지키는 신입니다.

    래서 정의를 밝히는 법관과 어사는 해치의 모습이 새겨진 모자나 옷을 입었는데,

    그래서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따지고 관원의 비리를 조사하여 탄핵하는 대표적 사법 기관인 사헌부(司憲府)의 관원들을 치관이라 하였으며 해태가 장식된 모자를 썼고, 사헌부의 장관인 대상전은 공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는 흉배(胸背)의 문양으로 동급의 다른 관원들이 학을 수 놓은데 비해 유독 해태를 수 놓았습니다.

    흉배에 새겨진 해태의 모습을 보면, 녹각과 같은 뿔이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았고, 크게 벌린 입, 포효하는 듯한 경쾌한 몸짓, 그리고 꼬리 끝에 긴 털이 돋아 있다. 이러한 해태문양은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되어 궁궐 등의 건축물에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해치는 또한 불을 다스리는 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궁궐이나 절에 가면 화제를 막기 위해 세워 둔 해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해치는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정의와 평화를 지켜주는 우리 민족의 수호신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대한민국 소방캐릭터 파이어스]의 모태가 되어

    소방 캐릭터로 활약중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태는 한국 설화에 나오는 동물입니다. 머리에 뿔이 있고 입에서 불꽃이 나오는 사자 같은 동물입니다. 해태는 악령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건물 입구에 조각상을 두어 보호했습니다. 불사조는 중생, 불멸,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동아시아 문화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용은 전 세계적으로 신화에서 두드러진 생물입니다. 주로 힘, 지혜, 행운을 상징합니다. 토테미즘처럼 무언가에 의지하려는 특성으로 인해 생겨난 신화 속 동물이 아닐까하는 추측입니다. 종교가 생겨난 배경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한자어로는 해치(獬豸)라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한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다투는 것을 들었을 때는 옳지 않은 사람을 받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믿어져서, 법을 심판하는 사람은 해치관이라 하여 해태가 새겨진 관모를 쓰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加飾)되기도 하였다.


    흉배에 새겨진 해태의 모습을 보면, 녹각과 같은 뿔이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았고, 크게 벌린 입, 포효하는 듯한 경쾌한 몸집, 그리고 꼬리 끝에 긴 털이 돋아 있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되어 궁궐 등의 건축물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광화문 앞에 놓여져 있고,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마루에도 놓여져 있는데, 이 것은 전각 안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기린 · 거북 · 용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여겼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봉의 앞부분은 기러기, 뒤는 기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새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가졌으며, 오색(五色)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악집도(樂汁圖)』에는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동물로 봉황의 모양을 묘사하고 있다. 『주서(周書)』에는 봉의 형체가 닭과 비슷하고 뱀의 머리에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다고 하였다. 이처럼 봉황의 모양은 한결같지 않다.


    그러나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의 새로 인식된 것만은 확실하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주1을 지나 지주(砥柱)주2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주3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 자는데,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한다.


    그래서 봉황은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천자가 거주하는 궁궐문에 봉황의 무늬를 장식하고 그 궁궐을 봉궐(鳳闕)이라고 했으며, 천자가 타는 수레를 봉연(鳳輦) · 봉여(鳳輿) · 봉거(鳳車)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천자가 도읍한 장안(長安)을 봉성(鳳城)이라 하였고 궁중의 연못을 봉지(鳳池)라고 불렀다.


    이처럼 봉황이 천자의 상징이 된 까닭은 봉황이 항상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고 믿어 천자 스스로가 성군(聖君)임을 표방한 데 연유한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送何堅序)」에서는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吾聞鳥有鳳者 恒出於有道之國).”라고 했다.


    또, 『순자(荀子)』 「애공편(哀公篇)」에는 “옛날 왕의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古之王者 其政好生惡殺 鳳在列樹).”라고 하였으며, 『춘추감정부(春秋感精符)』에는 “왕이 위로 황천을 감동시키면 난봉이 이른다(王者上感皇天 則鸞鳳至).”라고 하였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황제(皇帝) 57년 추칠월 경신에 봉황이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고, 『백호통(白虎通)』에는 “황제시절에 봉황이 동원(東園)에 머물러 해를 가리었으며 항상 죽실(竹實)을 먹고 오동(梧桐)에 깃들인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시절 뿐 아니라 요(堯) · 순(舜) · 주(周) 때에도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국 고대에는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증명하는 징조로 봉황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에는 봉황에 대한 신성관념이 중국처럼 강하지 않은 듯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봉황에 대한 신성관념이 발견되지 않고, 『고려사』 「악지(樂志)」 당악조(唐樂條)에 악관이 노래하는 가사 중에 봉황이 등장한다.


    「동풍보난사(東風報暖詞)」에 ‘봉궐(鳳闕)’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오양선(五羊仙)」에 ‘봉황내의(鳳凰來儀)’라는 말이 나온다.


    「오양선」은 군왕을 송수하는 무곡(舞曲)으로서 당악(唐樂)의 영향을 받아 봉황이 성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년환(萬年歡)」 · 「감황은령(感皇恩令)」 · 「화심동(花心動)」 등의 노랫말에도 봉황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선적(仙的)인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봉황은 고려조에 이미 중국음악의 전래와 함께 중국에서와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봉황은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노래나 춤에 쓰였다. 조선 초기에 윤회(尹淮)가 개작하였다는 「봉황음(鳳凰吟)」은 송축가(頌祝歌)로서 조선의 문물제도를 찬미하고 왕가의 태평을 기원한 노래이다.


    또한, 『세종실록』 악보(樂譜)에 수록된 「봉래의(鳳來儀)」는 궁중무용으로서 조선조 궁중에서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추던 춤이었다.


    이 무용은 당악과 향악을 섞어서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태평성세를 찬양하는 의미로 추어졌다. 이처럼 조선조 궁중의 가무 명칭에 봉황이 들어간 것은 옛날 순(舜)임금이 태평지치를 이룩하고 ‘소소(簫韶)’라는 음악을 지어 연주할 때 봉황이 와서 놀았다는 고사에 따라 군왕의 성덕을 찬양하는 의미로 쓰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봉황은 천자를 상징하는 새라는 점에서 조선왕실이 중국의 제실(帝室)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보여주는 점이기도 하다.


    봉황은 새 중의 으뜸으로서 고귀하고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그래서 봉황의 문양(文樣)이 건축 · 공예 등에 두루 쓰이었다. 전각(殿閣)의 기둥 머리에는 ‘봉두(鳳頭)’라고 하는 봉황의 머리 모양을 조각한 꾸밈새가 쓰였고, 공예에는 봉황문양을 장식한 장롱인 ‘봉장(鳳欌)’이 있다.


    그밖에도 봉황은 여러 가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공주가 시집갈 때 예장(禮裝)으로 띠는 비단 띠에 금박으로 봉황무늬를 새겨 ‘봉대(鳳帶)’라고 하였고, 비녀 머리에 봉을 새긴 것을 ‘봉잠(鳳簪)’이라고 하였다.


    또한, 봉황의 날개처럼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봉소(鳳簫)’가 있고, 봉황새의 꽁지 모양으로 만든 부채로서 ‘봉미선(鳳尾扇)’이 있다.


    봉황은 여인들의 수(繡)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봉황을 수놓은 베개를 ‘봉침(鳳枕)’이라고 하는데, 바늘을 조상하는 「조침문(弔針文)」이라는 글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라는 구절이 있음을 보아 봉황은 우리의 생활 속에 고귀한 것의 상징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봉황새는 자웅(雌雄)이 서로 의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었다는 「봉구황곡(鳳求凰曲)」이 구애(求愛)의 악곡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봉황은 남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속담에 ‘봉 가는 데 황(凰)이 간다.’, ‘봉이 나매 황이 난다.’라는 말은 사랑하는 남녀관계나 천정연분(天定緣分)을 의미한다.


    고전소설 「이대봉전」은 태몽에 봉황 한쌍이 등장하여 남녀 주인공의 탄생을 예시하는데, 봉의 꿈을 꾸고 탄생한 남주인공 이대봉과 황의 꿈을 꾸고 탄생한 여주인공 장애황의 결연담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봉황은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을 먹고 살며 오동나무에 깃들인다.


    이러한 봉황의 생태와 관련하여 「사랑가」에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숲을 넘노는 듯”이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봉황은 지절(志節)이 굳고 품위를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봉은 굶주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그것을 말해 준다. 봉황은 새 중에 으뜸으로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닭의 새끼 봉이 되랴.’,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라는 속담에서 닭이 보통사람을 나타낸다면 봉은 뛰어난 인물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시조에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울밑에 벽오동 심어 봉황을 보렸더니/봉황은 아니오고 날아드니 오작이로다/동자야 저 오작 쫓지마라 봉황이 앉게.”라는 작품이 있다. 설화에는 봉이 김선달의 일화로 알려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김선달에게 닭을 봉이라고 속이는 닭장수가 있었다.


    김선달은 짐짓 속는 체하고 그 닭을 사서 관가에 바치고 사실을 관장에게 말했다. 닭 장수는 혼이 나고 김선달은 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봉황은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동아시아의 상상의 동물입니다.

    법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동물답게, 그 상징성 때문에 국회, 경찰청, 대법원, 대검찰청은 물론이고 일산 사법연수원에도 해태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