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갑오개혁을 추진한 배경은 우선 개화 관료 및 지식인들이 개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였지만 꾸준히 본격적인 개화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과 폐정을 약속하여 교정청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며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근대적 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청일전쟁으로 적극적인 간섭이 불가능하였으며, 조선의 개화 관료들이 1차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전황이 유리하자 본격적인 간섭을 위해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친일 관료인 박영효를 내부 대신으로 간섭하며 2차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청일 전쟁 이후 일본이 시모노세키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실권을 장악하자 조선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친러 내각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1895년 8월 을미사변을 일으켜 또 다시 친일내각을 구성하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