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항쟁은 어떠한 이유에서 일어나게 된 것 인가요?
몽고항쟁은 약30년동안 일어났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몽고항쟁은 어떠한 이유에서 일어나게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떠한 사건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씨 무신 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몽고족의 침입이 있었는데 이에 고려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몽고의 침입에 끈질기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강화도에서 투쟁하는 동안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지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이에 항몽전쟁에 가장 용감했던 삼별초가 몽고에 반기를 들고 자주 운동을 펼치나 실패합니다.
이때부터 고려는 몽고의 압력을 받아 시련을 겪게되며 원 세력이 약해진 공민왕 때에 북진 정책이 국내의 제반 개혁 정책과 함께 수행되나 이 개혁정치는 성공하지 못하고 또한 밖으로부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받게 되어 이때부터 고려는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쇠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최씨무신정권이 확립되어 갈 무렵, 몽고에서는 테무친이 나타나 나라를 세워 스스로 칭기즈칸이라 일컫고 남송과 금에까지 세력을 뻗치니, 만주에 있던 거란의 유족들은 몽고의 압력을 받게 되어 고려로 몰려오나 김취려 장군에게 쫓겨나게 됩니다.
후, 다시 침입한 거란족은 고려의 반격을 받아 강동성에 웅거, 이때 고려는 몽고군의 도움을 얻어 강동성의 거란족을 소탕하는데 이로써 고려와 몽고는 처음으로 접촉하게 됩니다.
그 후 몽고는 거란족을 토벌한 것을 구실로 고려에 많은 물건을 요구하는 등 큰 압력을 가하므로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됩니다.
그러던 중 몽고의 사신이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근처에서 암살, 일찍부터 고려에 침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몽고는 이 사건을 고려의 소행이라 트집잡아, 장군 살리타를 보내 대대적으로 침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