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여왕이 즉위한 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성골 혈통이었기 때문이며, 그녀가 사망하면 더 이상 성골이 없으므로 진골에게 왕위가 넘어갈 것이 암묵의 규칙으로 정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진덕여왕 재위 기간의 정치적 실권은 비담의 난 토벌로 비담파 귀족 세력을 제압한 김유신과 차기 왕위 계승의 유력한 후보였던 김춘추가 주도하는 세력이 사실상 잡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신라 사회를 전기와 후기로 나눠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개혁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차기 국왕이 거의 확실했고, 섭정에 해당하는 김춘추의 의도대로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진덕여왕은 성골의 마지막 여왕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