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색다른돼지110
색다른돼지11023.08.22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와 멸망의 원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유럽의 역사에서 합스부르크 왕조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합네다. 합스부르크 왕조(가문)의 역사와 멸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 1273년 ~ 1918년)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표적인 가문입니다. 1273년, 스위스 알프스 산악 지역에 위치해 있던 보잘것없는 집안을 이끌던 백작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독일의 왕으로 선출되면서 일약 왕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물론 정치적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퇴위할 때까지 장장 650년 동안 제국의 품격을 지킨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체첸,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등을 포괄하는 다민족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영토를 넓히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오랜 세월 근친혼을 거듭한 결과 각종 유전병으로 600년의 역사를 뒤로한채 해체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 1273년 ~ 1918년)는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표적인 가문이다. 1273년, 스위스 알프스 산악 지역에 위치해 있던 보잘것없는 집안을 이끌던 백작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독일의 왕으로 선출되면서 일약 왕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물론 정치적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퇴위할 때까지 장장 650년 동안 제국의 품격을 지킨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체첸,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등을 포괄하는 다민족 제국으로 성장했다.


    18세기 중반에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근대 개혁정치의 시발점으로 평가될 만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가 제국의 통치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19세기 초반에는 혁명 프랑스에 반대하는 유럽 보수반동 정치세력의 보루가 되어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연방국가 모델을 창출하는 왕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 6월,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처의 죽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발생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을 통틀어 가장 유서 깊은 왕실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1273년은 합스부르크 가문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스위스 알프스 북부 지역의 작은 봉건영주에 불과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독일 선제후들에 의해 (신성)로마독일 왕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루돌프 1세가 하루아침에 독일의 제왕으로 등극하게 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은 어엿한 유럽의 왕가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영토를 소유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출처 : 독일-오스트리아 왕가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유럽의 패권을 휘어잡았던 가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세습하면서 근세 유럽의 얼마 안되는 황제 가문으로서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합스부르크 황실이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 인해 제국이 해체되고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합스부르크가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이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제위와 왕위를 상실하고 특권이 소멸했지만, 여전히 유럽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선망의 명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