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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키위191
넉넉한키위19123.11.03

명나라는 폐허가 되었던 만리장성을 본격적으로 재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명나라는 오랫동안 폐허가되고 사용을 하지 않았던 만리장성을 본격적으로 재건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배경에서 만리장성을 본격적으로 재건하여 사용하게 된것인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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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가 만리장성을 재건한 이유는 몽골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명나라는 원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을 통일하였고, 몽골이 다시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재건하였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만리장성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벽돌형 만리장성으로, 진나라 시황제의 만리장성과는 위치와 구조가 다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대에 이르러 제 11대 세종 가정제 때 몽골족의 알탄 칸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경술의 변이 일어난 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 12대 목종 융경제 때 되어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로 굳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은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왕조입니다. 따라서 북원의 재침을 막고, 국방력 강화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따라서 원을 막기 위해 장성을 축성하며 현재 형태의 장성이 되었습니다.

    영락제가 북경을 근거지로 세력을 구축하고 이때부터 건설을 시작한 만리장성은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이 기초가 되었으며, 수나라 당시의 장성도 활용되었습니다. 북경 인근의 동단을 중심으로 축성한 만리장성은 명의 가정제 때 몽골의 침입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하게 건설되었으며, 서쪽의 장성들도 지속적으로 개축되어 16세기 말에 지금의 만리장성이 만들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에 이르러 제11대 세종 가정제 때 몽골족의 알탄 칸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사건(경술의 변)이 일어난 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12대 목종 융경제 때가 되어서야 현재와 같은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 나라의 영역이 기존 한나라의 영역보다 상당히 남쪽으로 축소되었으므로, 사실상 장성을 신축해야 하는 데다가 공법의 변화까지 겹쳐서 장성의 재 건설은 장기간에 걸쳐서 천천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