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은 오랫동안 청나라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청나라의 기술과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없었나요
병자호란이후에도 조선은 오랫동안 청나라를 무시하고 기술이나 학문도 철저히 배우지않고 배척한다고 하는데요
이후에도 청나라의 기술과 학문 문화등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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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는 1637년부터 1645년까지 8년간 청에 볼모로 있었습니다. 당시 소현세자는 청나라 수도인 센양에서 1644년 베이징으로 천도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청나라 문물과 서양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의 발전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은 청에 표면적으로 사대였지만 북벌론을 주장하며, 청의 문물을 오랑캐의 문화로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박지원, 박제가 등 연행사 경험을 했던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청 문물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북학론을 주장했습니다. 북학파의 주장은 농업과 상업공업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홍대용 등의 천문학 수학 기술은 조선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사회개혁, 조선의 문화 수준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19세기 개화파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이 대두되면서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용후생 학파(중상학파)'가 등장하여 어느정도 청나라의 기술,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아예 없지는 않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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