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대제가 서로마황제로 즉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카를로스대제 당시에 이미 서로마는 멸망한 뒤이기때문에 서로마황제는 그냥 명목상 직위에 불과했는데 카를로스대제가 서로마황제의 즉위를 하면서 노린것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제로 카를로스 혈통이 오토 대제의
신성 로마 제국 창건 명분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를 담당하였으므로
카롤루스를 신성 로마 제국의 일종의
상징적인 초대 황제처럼 사람들이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롤루스 대제(742~814)는 프랑크 국왕으로, 768년 부친인 피핀이 죽은 뒤 동생 칼만과 왕국을 공동 통치하다가 771년 칼만이 죽자 프랑크 왕국을 통일 지배하였다. 40여 년에 걸친 재위 기간 동안 사방을 점령하여 대통일 사업을 성취하였으며, 772년부터 804년 사이에는 작센을 병합하고, 774년에는 교황의 청으로 북이탈리아 랑고바르트 왕국을 멸망시켜 이를 합병하였다. 778년 서쪽으로는 사라센 족을 토벌하여 에스파냐 변경 영토를 설치하였다. 또한 그 뒤에도 주변의 국가를 정복하여 거의 대부분의 게르만 족을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종교, 즉 프랑크 왕국과 그리스도교를 통합하였다. 이 밖에 이탈리아의 영토의 일부를 교황에 헌납하는 등 교회에 대한 봉사가 컸으므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800년 크리스마스에 서로마 황제에 올랐다. 이로써 다시 부활된 황제권과 교황권의 제휴로 피핀, 클로비스 이래의 과제였던 유럽의 비잔틴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 실현되었다. 또한 수도 아아헨에 궁정 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알퀴누스를 비롯한 학자들을 초빙하여 교육 사업을 장려하였으므로 카롤링 르네상스 문화가 번영하였다. 이 점에서 유럽을 형성하는 3대 문화 요소인 고전 문화, 그리스도교, 게르만 민족 정신은 카롤루스 대제가 통치하는 시기에 완전한 통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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