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우리나라에 서양문학이 처음 소개될 때 왜 번역보다 번안이 많았나요?

개화기에 서양 소설이 한국에 들어올 때 원문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한국식 배경으로 바꾼 번안소설이 많았다고 배우는데, 왜 이 시기에 이런 방식이 선호됐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전문가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00년 전인 개화기에는 일반 사람들은 서양 문화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영어에 대한 이해도 떨어 졋습니다. 이렇게 낯선 서구 문화를 당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바꾸어야 해서 당시 번안 문학이 발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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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90년대에 애니나 만화에 로컬라이징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은 너무 낯선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것이 음식이던 소설이던 영화던 만화던 뭐든지 말이죠.

    그래서 문화교류 초기에는 일본 만화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국식으로 바꾼다던가 하는 번안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이 근대 시대라면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은 목숨걸고 몇년 단위로 계획해야 하는 것이니 해외 문화는 낯설 수 밖에 없죠

  • 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근대전환기에는 서양의 지명이나 인명, 문화적 배경 등이 조선 사람들에게 너무 생소했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인공 이름을 한자식으로 바꾸고 배경도 조선이나 중국으로 옮기는 등 번안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출판 시장에서는 고전소설이나 판고리 문체가 인기가 있어 이러한 형식으로 번안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서양언어를 매끄럽게 번역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했고 대부분 일본에서 이미 번안된 책을 가져와 이중번역을 거쳤던 점도 번안소설이 유행한 원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