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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한사자18
내추럴한사자18

혹시 이거 자료 찾는거 도와주실분...

한국사 공부하다가 궁금한게생겼는데

베델과 양기탁을 중심으로 대한매일신보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베델을 우리나라가 앉혀놓았다고 배웠던거 같은데 베델이 하고싶다고 해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양기탁이 돈을주며 요구를 해서일까? 그리고 또다른 질문은 대한매일신보는 어떻게 해서 사라지게 된것일까? 라는 질문인데 어에대한 자료혹시 아실까요..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네요..(재가 못찾는 거 같지만..)

105인 사건이 교과서에 조선 총독부는 신민회를 없애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하였다고 한다 왜 일본도 아니고 조선 총독부가 그일을 막은 것일까? 그리고 왜 이일이 잘수행되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왜 그런 사람들 10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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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 베델은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인지하게 됩니다. 때마침 베델과 인연이 있었던 양기탁의 설득으로 베델이 신문을 발행한 것입니다. 즉 양기탁의 설득과 함께 베델 본인의 의지가 결합되어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것입니다. 양기탁은 대한매일신보의 실질 운영을 책임졌으며, 베델은 명목상 사장(발행인) 역할로서 일본의 무력한 부분을 노린 정치적/외교적 보호막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일제에 의해 합병되면서 강제 폐간되었으며, '매일신보'로 명칭을 변경하여 총독부 기관지로 변모한 것입니다.

    1911년 105인 사건은 조선총독부가 신민회 등 항일 단체를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를 조작하여 700여명을 검거하고, 최종적으로 10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민이 있었으며, 더 이상 신민회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