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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흑로12
빼어난흑로1223.02.24

조선시대에는 경연을 하는 장소가 어디인가요?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들과 하던 경연은 궁의 어느 건물에서 하였었나요? 전기랑 후기의 정궁이 다르니 경연장소도 달랐을거는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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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궁의 장소별 의미 및 행사 종류에 대해 잘정리된 자료가 있어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1. 경복궁

    1) 근정전

    경복궁의 정전.

    조하를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 거행되었던 곳.

    2) 사정전

    경복궁의 편전.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

    3) 천추전

    편전일곽의 서편전에 해당하는 천추전으로 고종 2년(1865년)에 중건한 건물.

    4) 강녕전

    왕의 침전.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는 곳.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5) 수정전

    세종대왕때 집현전이 있던 자리에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건물.

    고종 초기에는 침전으로 사용되고, 편전의 역할을 하였으며,

    갑오개혁 시절에는 군국기무처 및 내각으로 사용되기도 함.

    6) 경희루

    경복궁 내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의 접대나 연회장소.

    7) 교태전

    왕비의 침전.

    뒤쪽으로는 인공으로 조성된 언덕이 있는데, “아미산”이라고 함.

    8) 자경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

    뒤편에는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인 십장생 굴뚝이 있음.

    9) 향원정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지은 2층의 정자.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라는 구름다리가 있음.

    10) 건청궁

    고종 10년(1873년)에 지은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음.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음.

    11)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과 더불어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으로 옮겨왔음.

    12) 태원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

    후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도 쓰임.

    13) 자선당과 비현각

    자선당과 비현각은 동궁의 주 전각.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으로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

    14)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

    15) 건춘문

    궁성의 동쪽 문.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시작 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16) 영추문

    경복궁의 서쪽문.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17) 신무문

    신무문은 궁성의 북쪽 문.

    18) 동십자각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서있는 각루.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궁성 전면 양 모서리에 궁궐 안팎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세운 것.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버림.

    2. 창덕궁

    1)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

    '(큰 덕은 백성등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음.


    2) 금천교
    1411년(태종11년)에 축조된 돌다리.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다리를 놓음.

    3)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

    4) 선정전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

    5) 희정당

    임금의 침실이 딸린 편전.

    나중에 어전회의실로 사용.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

    6) 대조전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짐.
    1917년 이 건물이 불에 타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지음.


    7) 부용지와 부용정
    부용지는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음.
    부용정(1792년 건립)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음.


    8) 영화당
    왕족의 휴식공간.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


    9) 주합루
    1776년(정조 즉위년)에 지은 2층 누각.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

    10) 불로문
    하나의 통돌을 깎아 세운 문.

    임금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음.

    11) 기오헌과 의두합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음. 이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인 정조였으므로 주합루 뒤쪽에 집을 짓고 이곳을 나라 일을 생각하는 장소로 삼았음.

    12) 애련지와 애련정
    숙종18년(1692년)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

    숙종은 『애련정기』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음.

    13) 연경당과 선향재
    1828년(순조28년) 효명세자가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칸 민가형식의 집.
    선향재는 서재로 이용.

    14) 성정각
    세자가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곳.
    성정각 뒤의 관물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 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

    15) 낙선재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낙선재라 부름.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년)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짐.
    이 곳은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등이 1963년~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

    16) 어차고
    과거에는 '빈청'이라 하여 정승들이 편전에 들기 전에 대기하며 국사를 의논하던 장소.
    1910년대 이후부터 이 곳을 어차고로 이용.
    현재는 순종 황제와 황후가 사용하던 자동차와 조선 시대의 교통 수단을 전시하고 있음.

    17) 금호문
    창덕궁의 서문.

    정문인 돈화문이 임금과 외국 사신, 사헌부 대사헌 등이 출입했던 문이라면

    금호문은 승정원의 승지나 홍문관 등 궁내 관서에 근무하는 벼슬아치들이 출입했던 문.

    18) 존덕정과 폄우사
    존덕정(1644년 건립)은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함.
    폄우사는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

    19) 관람정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
    관람정 앞 연못은 대한제국 말기나 일제 초기에 현재와 같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

    20) 옥류천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음.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음.

    3. 창경궁

    1)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

    2) 옥천교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 위에 설치한 다리.

    3) 명정문

    이 문은 명정전을 둘러싼 월랑 중 명정전과 마주보고 있는 동월랑의 중앙부에 있음.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

    4)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짐.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

    5) 문정전

    창경궁 창건 때 편전으로 건립.

    6) 숭문당

    조선 경종 때 건립.

    순조 30년에 큰 불로 소실된 것을 그해 가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름.

    영조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을 접견하여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연를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함.

    7) 빈양문

    숭문당 북쪽에 연접되어 있는 문.

    치조공간(외전)과 연조공간(내전)을 연결하는 통로의 개폐 기능을 갖는 문.

    8) 함인정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

    9)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름.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

    10) 환경전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름.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으로 사용하기도 했음.

    11) 통명전

    창경궁의 연조 공간.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

    12)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했음.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

    13) 영춘헌과 집복헌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행각.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

    14) 춘당지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

    15) 관덕정

    이 정자는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있는 사정.

    인조 20년(1642)에 취미정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현종 5년(1664)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

    16) 선인문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의 예전 이름은 서린문이라 하며 동궁의 정문이었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함.

    17) 월근문

    홍화문 북쪽에 있는 문.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인 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에 건립.

    18) 집춘문

    창경궁 동북쪽 담장에 있는 궁문.

    서울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음.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태학 서쪽 반교와 제일 가까워 역대 임금들이 태학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하였다 함.

    4. 덕수궁(=경운궁)

    1) 대한문

    덕수궁의 정문.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덕수궁 남쪽 중화문 건너편에 있던 인화문이었음.

    1904년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음.

    2) 금천교

    인공으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놓은 돌다리.

    3)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

    4) 석조전

    대한제국기 동안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사신들의 접견실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는데, 1층에서는 시종들이 대기하고, 2층은 황제의 접견실,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

    5) 준명당

    1897년에 새로 지은 내전의 하나로 한때 고종이 거처하며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

    1904년의 화재로 다시 지어짐.

    6) 즉조당

    덕수궁의 침전.

    임진왜란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에 돌아와 시어소로 사용.

    1623년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한 뒤에 즉조당이라 불림.

    7) 석어당

    한때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며,

    역대 국왕들이 임진왜란 때의 어렵던 일을 회상하며 선조를 추모하던 곳.

    8) 덕홍전

    내외 귀빈이 황제를 알현하던 곳. 함녕전 서쪽에 위치.

    9) 함녕전

    광무 1년(189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

    고종이 왕위를 물려준 다음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기자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

    10) 정관헌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서양식 정자인 정관헌은 1900년경에 건립.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

    11) 광명문

    함녕전의 정문.

    5. 경희궁

    1)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

    2) 금천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

    3) 숭정전

    경희궁의 정전.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

    4) 자정전

    경희궁의 편전.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함.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함.

    5) 태령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

    6. 인경궁

    조선 광해군 때 인왕산 아래에 지었던 궁궐.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창덕궁을 광해군 때 복구는 하였으나,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일부 풍수지리가의 말을 믿고 불길하게여겨 이어를 망설였음. 광해군은 경기도 파주시 교하에 신궁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간 뒤, 1616년 성지라는 승려가 풍수지리설을 들어 인왕산 아래가 명당이므로 이곳에 궁전을 지으면태평성대가 온다고 주장하자 이 말에 따라 이 곳에 궁터를 잡게 한 뒤 공사를 시작함. 그런데 공사 도중에 지금의 종로구 신문로일대에 왕기가 있다는 설이 나돌자, 광해군이 이를 누르기 위하여 궁궐을 짓게 한 것이 경덕궁(=경희궁)이었음. 이에 따라 인경궁공사는 거의 중단되다시피하여 1621년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계속되었으나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건설공사는 중지됨 병자호란 뒤 1648년(인조 26)에 청나라의 요구로 홍제원에 역참을 만들 때 청나라 사신들의 숙소 등의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하여 인경궁과 태평관의 건물을 허물어 재목과 기와를 사용하였으므로,이 후부터 인경궁의 자취는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임.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경연장소는 경복궁의 사정전, 창덕궁의 선정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연(經筵)은 왕에게 유학의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진강(進講)하고 논의(論議)를 받는 학술제도다. 중국 전한 때 황제에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는 관례를 원류로 추정한다. 고려 문종 때 처음으로 도입했고, 조선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기능을 강화해서 일명 ‘경연정치’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경연 장소는 주로 창경궁의 경우 숭문당, 경복궁의 경우 경연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주는 수정전(修政殿, 옛 집현전)을 열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신하들과 하던 경연은 주로 경복궁에서 열렸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정궁 중 하나로, 현재도 서울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만, 경연이 열리는 장소는 시대에 따라 달랐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조 때에는 경복궁 내에 별도의 경연당이 설치되어 거기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연을 하는 장소로 "서당"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서당은 서적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도덕, 윤리, 문학, 예절, 사상 등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높은 지식과 교양을 지닌 인재들을 배출하기 위해 경시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문학, 예술, 체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선발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쟁문화는 조선시대 사회의 민중적인 지식수준 향상과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덕수궁 경복궁 같은 궁 안에서 편전이라는 곳에서 경연을 실시했다고 자료를 찾아보니 나오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