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서는 도교의 상징적 공간이었기 때문에 유생들은 이를 폐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연산군과 중종 대에는 소격서 폐지를 두고 상당히 많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소격서 폐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다가 결국 1518년(중종 13년) 조광조 등 신진 사류 등의 강력한 요청으로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이 제거되면서 이듬해 디시 설치되었습니다. 소격서는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격서는 도교 양식의 제사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서울 종로구 삼청파출소 뒤 편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광조와 신진사류들은 도교는 세상을 속이고 더럽히는 이단의 도이므로 소격서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는데 나아가 하늘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이 할 수 있는데 제후격인 조선 왕이 행하는 건 예에 어긋나므로 소격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중종은 건국 이래 계속해 이어져 내려온 제도이므로 함부로 없앨 수 없다면서 조광조의 청을 거부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