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민간기악단 삼현육각에 대해 알려주세요~
조선 후기 민간에서 유행한 삼현육각은 어떤 공연이나 연주였나요? 삼현육각이라는 단어는 어떤 뜻을 가지고 만들어 졌으며, 공연에서 어떤 악기들을 사용했는 지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현육각이라는 것은
악기편성법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향피리 2·대금·해금·장구·북의 6인조가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 악기의 종류나 편성 인원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도에서는 모두 향피리 2·대금·해금·장구·북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근래의 무용반주에서는 피리 두 개 대신 피리 한 개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현육각 > 국악에서 전형적인 악기 편성법으로 해금.젓대.피리2(목피리, 곁피리).북.장고의 6잽이 편성되는 음악 입니다.
삼현육가은 연향의 부대음악인 거상풍류.무용반주.행진음악(고관, 귀인의 행차)에 쓰였습니다. 궁정 뿐만 아니라 지방관아나 사가의 향연, 향교의 제향, 향도 신사 등에 쓰임으로써 경기.진주.통영.해주 등 지역별 특색이 갖추어져 악곡 구성과 가락에 차이가 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피리 2·대금·해금·장구·북의 6인조가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서 악기의 종류나 편성 인원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 김홍도(金弘道)나 신윤복(申潤福)의 풍속도에서는 모두 향피리 2·대금·해금·장구·북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근래의 무용반주에서는 피리 두 개 대신 피리 한 개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또 1701년(숙종 27) 일본 <통신사행렬도 通信使行列圖> 중의 세악수(細樂手) 편성을 보면 해금·피리·대금·북·장구·징으로 피리 1 대신 징이 들어가 있다. 또한, 1926년 김석태(金錫泰)가 그린 <조선열성조능행도 朝鮮列聖朝陵行圖>에는 말을 탄 어전취타(御前吹打)와 세악수의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에 있는 세악수의 편성은 해금 4, 대금 4, 피리 4, 장구 4로 되어 있다.
현행의 삼현육각 편성은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무용반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악기의 종류나 편성 인원이 옛날의 원칙과는 다르게 편성된다. 특히 민속 삼현육각이라고 할 수 있는 굿판[巫儀式]의 삼현육각이나 탈춤판의 삼현육각은 형편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편성된다.
서울굿의 경우 피리·대금·해금·장구·바라로 편성되고, 경기도 당굿의 경우 피리·대금·해금·장구·징으로 편성되며, 현행 <진도씻김굿>의 경우 피리·가야금·아쟁·징·북으로 편성된다. 또 <은율탈춤>의 경우 피리·해금·장구로 편성되고, <양주별산대놀이>의 경우 피리·해금·대금·장구로 편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무용반주로 사용되는 경우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도나 요즈음의 여러 경우에서와 같이 모두 일렬로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원칙인데, 앉는 순서는 꼭 일정하지 않다. 다만 피리가 2인조로 두 개 사용될 때는 반드시 옆에 붙어 앉는다.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장소는 <양주별산대놀이>의 경우 ‘삼현청(三絃廳)’이라고 한다.
삼현육각이 행악(行樂)으로 사용될 때는 여러 가지 연주형태를 취한다. 임금의 행차에는 어가(御駕)의 앞뒤에 2개조의 악대(樂隊)가 따르게 마련인데, 앞의 것은 전부고취(前部鼓吹)라 하여 대취타(大吹打)의 악기편성이고, 뒤의 것은 후부고취(後部鼓吹)라 하여 삼현육각의 편성이었다.
이 삼현육각 악사들은 ‘세악수’ 또는 ‘삼현수(三絃手)’라고도 불렀다. 세악수의 편대(編隊)와 자세는 경우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1571년(선조 4) <영접사제도감청의궤 迎接賜祭都監廳儀軌>에는 후부고취가 일렬횡대로 6인씩 두 줄로 서서 연주하는 모습이고, 1701년의 일본 <통신사행렬도>에는 해금과 북, 대금과 장구, 피리와 징이 2열 종대로 3인씩 걸어가면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또, 1926년 <조선열성조능행도>에서는 세악수들이 모두 말을 타고 가면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민화(民畫)에 나타나는 민간의 행악행렬은 해금과 대금, 피리 2, 장구와 북 등이 2열종대로 걸어가면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행악행렬은 평생도(平生圖)에 나오는데 하나는 과거에 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급제자가 삼현육각을 앞세우고 걸어 오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벼슬길에 나아가서 행차할 때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가는 모습이다. 결국 삼현육각은 일렬횡대로 앉아서 연주하거나, 2열횡대로 서서 연주하거나, 2열종대로 걸어 가면서 연주하거나, 말을 타고 말 위에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삼현육각의 편성으로 같은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감상용으로 음악만 독립하여 연주하면 ‘대풍류[竹風流]’라 하고, 무용반주로 쓰일 때만 삼현육각이라고 하는 예도 있다. <수제천 壽齊天>(일명 井邑)·<동동 動動>·<삼현영산회상 三絃靈山會相>·<잦은한잎 數大葉>(일명 慶豊年) 등이 감상용으로 연주하는 대풍류의 예에 해당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