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중기 이래 강화되어 왔고 영조 ·정조대의 탕평책에도 꺾이지 않은 소수 명문 가문이 주도하는 정치질서를 개편하지 못하고 건강을 상한데다가, 1809년의 유례없는 기근과 1811년의 홍경래의 난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국정주도권은 외척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김조순에게 돌아가고 이른바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자리잡음으로써 적극적인 권한행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1827년에는 오랫동안 계획해온 대로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에게 대리청정시키고 국정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